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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그후 개발팀은 어떻게 됐을까?



< 스포츠카의 개발 기술 >
엘란을 담당한 지 이제 3년반밖에 안된 나로서 스포츠카의 개발기술이란 이런거다라고 말하기는 사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엘란을 개발하며 여러 스포츠카들을 검토하면서 내 나름대로 느낀 점만을 말해보고자 한다.

스포츠카의 개발기술은 한마디로 "튜닝(Tunning)과 맷칭(Matching)의 기술"이라고 본다. 특히,상품성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양산형 스포츠카와는 달리 백야드빌더 정신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통 스포츠카는 더욱 그러하다. 초창기 스포츠카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집 뒤뜰의 차고겸 작업장에서 우리나라 장안평 같은 곳에서 사 모은 각종 자동차의 쓸만한 중고품과 나름대로 스포츠카 특성에 맞추어 설계되고 제작된 샤시,바디등의 부품들이 모여져 차를 꾸미게 된다.

엔진과 미션,차체와 샤시,램프와 미러,시트및 인테리어 부품들 모두가 제각각이지만 이를 조화롭게 맷칭시키고 적절한 운동신경을 갖추게끔 잘 튜닝을 하여야 한다.

엘란을 개발하면서 이런 점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같다. 소량생산방식의 로터스 설계부품과 대량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진 기아 설계부품과의 맷칭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예를 들어, 슬러시 스킨을 우레탄과 발포하여 만든 엘란의 도아트림은 통상 기아가 쓰는 인젝션(사출) 도아트림과 비교하여 작업성이 까다롭고 불량률도 많을 뿐 아니라,검사에 합격된 제품을 써도 나중에 후변형이 많아 다른 부품과 맷칭이 잘 이루어 지지를 못하고 있다. 개발 막바지에 많은 설계변경을 통하여 품질육성에 매달려야 했으나,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개발하기 전에는 품질육성에 한계를 느꼈다.

물론 로터스도 그걸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엘란같이 소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면서 보다 나은 품질을 위해 비싼 금형개발비를 주고, 금형 한벌로 30만개이상 생산할 수 있는 사출방식을 택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러한 튜닝과 맷칭작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기아처럼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이 가동되는 회사는 오히려 커다란 장애를 안게 된다. 즉,개인별 업무가 기능별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카를 개발하는데 있어선 어느 특정부품만의 전문가보다는 보다 더 넓은 영역의 다방면의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한다.

 다시말해서 프레임과 타이어,브레이크 등 담당자가 전부 구분되어진 것 보다는 이러한 샤시계통의 토탈 엔지니어가 필요한 것이다. 또, 기초설계,상세설계,시작,실험,개발 등으로 업무가 구분되기보다 이러한 업무를 모두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것은 개발비용의 절감과도 밀접한 관련이 된다.

엘란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절감한 바 있지만, 그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은 다시 기능별 세분화 된 업무를 맡아 다른 프로젝트에 종사하고 있다. 엘란은 사실 시작에 불과한 프로젝트였고, 그러한 스포츠카의 개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이 당초 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거대한 조직속으로 다시 흡수융해되어 사라지고 마는 듯 하여 안타깝다.

기아자동차가 엘란과 같은 프로젝트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기 어렵다 면, 차라리 향후 기아모텍이 주도가 되어 엘란 다음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나아가 스포츠카의 전문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의 스포츠카 역사를 위해선 더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그러려면 소프트탑의 기술도 기아모텍이 직접 주도하고 연구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소프트탑의 불모지나 다를 바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 엘란개발팀 팀원들의 현주소 >
현주소라고는 했지만.. 이미 꽤 지난 상황 설명이 되겠네요. 그냥 엘란 개발후 이분들이 어떤일을 하게 됬는지를 알면 될 것 같네요. ㅎㅎ

최근의 사태를 겪으면서 내 자신도 인생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꼈다. 자동차 산업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엘란도 판매가격은 2750만원이지만, 이중에 특소세,부가세등의 세금이 658만원이다. 고객이 등록하면서 내는 세금까지 고려하면 엘란 한 대가 국가에 내는 세금은 약 1000만원은 된다. 이런 세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중 몇사람이 53년이나 된 기아의 운명을,나아가 한국 자동차산업과 국가경제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볼 때도 몇십년간 자동차에 젊음과 열정을 나아가 인생을 바쳐온 사람들이 심한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만들었고,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사명감으로 일해온 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사회에 대한 불신감을 안겨 주었다.

수레바퀴만 전문으로 커 온 기아, 사십년간 자동차산업에 전적 으로 몸담아 온 김선홍회장. 한국 자동차산업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그가 취임 6개월밖에 안된 경제부총리나 은행장 몇몇에 의해 운명을 맡겨야 하는 서글픈 현실. 그들이 과연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세계 선진 자동차 메이커와의 싸움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오늘따라 엘란 개발 초기에 내가 참여하고 난 뒤 우리 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내 곁을 떠난 순서대로...

* 정재홍 대리...기초설계 출신으로 엘란 최초개발부터 참여. 나와는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고, ROTC로 병기교육도 함께 받고 입사동기기도 하다. 엘란 엔진룸과 플랫폼 설계등을 영국 에서 로터스와 함께 6개월간 일했다. 자원퇴직후 뉴질랜드 로 이민가려다 실패후 삼성자동차 연구소에서 과장으로 근무중.(함께 2개월 근무)

* 최인철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금형설계 출신. 개발팀에 파견 합류하였으나 차량개발보다는 계속 금형설계 분야에서 일하고자 퇴직후 대우자동차 금형생기에 재입사.(함께 3개월 근무)

* 김진영 대리...실험 출신. 내장설계를 담당하게 되었으나 설계경험이 없어 도면 보는 것 조차 힘들어 함. 적응하지 못하고 끝내 퇴직후 속셈학원 운영. 그후 내장설계파트는 후임 자가 한동안 없어 개발일정이 6개월 정도 지연되어 영원한 블랙홀이라는 별명이 붙음.(함께 4개월 근무)

* 심영보 대리...엔진설계 출신. 과장진급 누락후 영업부문으로 전보 희망하여 수원지역본부로 전보.(함께 5개월 근무)

* 박종관 과장...기초설계 출신. 개발팀의 엔지니어링 분야를 이끌며 설계구상및 사양결정을 맡다가 기아인터트레이드로 전보발령되어 현재까지 자동차분야의 수출입업무를 담당하고 있음. (함께 5개월 근무)

* 손용희 사원...내장설계 출신. 파견후 김진영대리 후임으로 내장품 설계를 담당하였으나 수행해내지 못하고 복귀희망하여 현재 상용차 내장설계를 맡고 있음.(함께 3개월 근무)

* 이연희 사원...파트타이머 신입사원으로 안양여전 다님. 팀의 행정 사무및 회계업무를 담당.졸업후 인천 송도에서 출퇴근 하기 어려워 사퇴. 잠시 무역회사 근무하다가 기아모텍 이우진 부사장이 비서로 재채용되어 1년간 다니다 퇴직후 결혼.(함께 6개월 근무)

* 최봉순 대리...플라스틱 생산기술 출신. 로터스의 차체및 플라스틱 생산기술 연수받고 기아모텍 생산준비를 지원하다가 퇴직후 엔지니어링 회사 근무.(함께 1년 2개월 근무)

* 정선곤 대리...기아모텍 차량연구부. 94년 10월 개발팀에 합류후 샤시의 프레임을 담당.95년 10월 기아모텍 복귀후 1PP,2PP(pilot production)및 MP(mass production)을 지원하고 현재 과장으로 근무중.(함께 1년 근무)

* 성지용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파견나와서 파워트레인과 전장품 설계및 개발을 담당하고 복귀함. 엘란 신차발표회때는 전시차 안내요원과 3일간의 서울,부산 거리홍보때 나와 함께 고생을 많이 한 다방면에서 재주가 뛰어난 편임. 요즘은 드디어 소망하던 빨강 엘란의 오너가 되어 하이텔 엘란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중.(함께 1년 근무)

* 김영일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 파견나와서 김태형대리와 함께 샤시의 브레이크,핸들,체인징파트를 담당.복귀후 대정부 인증업무를 담당하였음.(함께 1년 근무)

* 김재유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 파견나와서 서용규대리와 함께 타이어,액슬,마운팅,서스펜션을 담당하다 복귀후 품질 관리를 담당하다 사퇴. 1년뒤 세무공무원 시험 합격하여 현재 세무소 근무.(함께 11개월 근무)

* 김민수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 파견나와 기술관리업무를 연수 후 메인챠트,설계변경등의 데이타베이스 전산화 업무를 담당하였으나 퇴직.(함께 3개월 근무)

* 정준교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 파견나와 내장분야를 담당. 복귀후 얼마안가 퇴직하여 LG산전에서 근무.(함께 3개월 근무)

* 안기옥 사원...기아모텍 차량연구부. CAD가 전공인 여직원. 파견나와 정준교사원과 함께 내장설계를 담당하다 복귀후도 계속 내장설계를 맡음.최근 평소 알고 지내던 기아연구소의 내장설계 담당자와 극비리 연애끝에 성공. 금년 10월 진주에서 결혼하기 위해 사퇴.(함께 3개월 근무)

* 서용규 대리...샤시설계 출신.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다 기아입사. 타이어,액슬,엔진 마운팅,서스펜션의 개발을 담당하다 원소속으로 복귀.(함께 1년 근무)

* 김태형 대리...샤시설계 출신. 브레이크,핸들,체인징파트를 담당 하고 원소속으로 복귀.(함께 1년 근무)

* 박인송 대리...플라스틱 부품 설계 출신. 쌍용자동차에서 칼리스타 바디설계를 담당했었음. 엘란 차체및 외장부품을 담당. 엘란 생산 준비가 임박할 무렵 자진사퇴후 보험개발원 에서 근무중. 엘란판매후 보험수가 산정 업무도 담당 하여 엘란과 계속 연관되기도 함.(함께 1년 2개월 근무)

* 천경우 부장...엔진설계 출신. 박종관과장 후임으로 엔지니어링 분야를 총괄함. 전형석부장 파견후엔 PM(project manager) 을 대행함. 엘란 판매개시 몇달뒤 Sephia-Ⅱ 프로젝트를 맡아 현재 개발완료하고 판매개시함.(함께 2년 근무)

* 오정숙 사원...이연희사원 후임으로 파트타이머.행정사무및 회계 업무를 담당하다가 천경우부장과 함께 일함. 현재는 해외 생기부에 전보발령되어 근무중.공주병이 조금 악화되어 공주암 증세가 있는게 다소 아쉬움.(함께 1년 근무)

* 김병섭 사원...신입사원으로 입사.파워트레인및 샤시분야의 개발 종합관리를 주로 담당.해외 스포츠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많음. 최근 SLC(spors looking car)팀이 신설되면서 스카웃되어 감.(함께 2년 6개월 근무)

* 조영남 사원...영국 유학시절 로터스 견학후 엘란에 관심을 가짐. 귀국후 기아의 엘란을 생각하고 입사하여 1년간 전부장과 함께 기아모텍에 파견되어 생산준비를 지원함.팀복귀후 시장품질및 생산판매현황을 관리하다가 크레도스 풀모델 체인지팀 신설로 최근에 자리를 옮김.집이 일산이라 나와는 아직도 카풀중임.(함께 2년 8개월 근무)

* 전형석 부장...엘란개발의 총체적인 주역.기초설계 출신.여러 차종의 개발Concept 설정및 기초설계를 담당한 전형적인 기술자임. 기술적 호기심과 엔지니어로서의 집념이 강하고 일에 대한 애착도 강함. 생산제조와 비즈니스 분야에 경험이 적고,문제해결쪽보다는 문제제기와 문제연구에 더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다소 아쉬움. 여러차례에 걸쳐 스포츠카의 개발을 검토하고 제안하였으나 번번히 중단되다가 결국 회장님 지시로 로터스의 엘란을 기아모델화 하는데 성공함. 여러 설계자및 기아모텍 파견자들을 이끌고 로터스와 함께 개발을 추진하고,설계가 끝난뒤엔 기아모텍에 1년6개월간 파견되어 생산관리및 품질육성을 지도함. 현재 연구소장인 김재만상무와는 오래전부터 개발추진방식에 의견차이가 있었던 탓인지, 금번 기아사태로 인한 감원대상에 포함되어 20년간 자동차개발에 몸담아 온 기아를 사퇴당하고 현재 실직상태임. 요즘 근황은 댁에서 설겆이도 해가며 쉬면서 인생을 새롭게 돌아보는 중이며 가까운 시일에는 부부동반 으로 유럽을 여행할 생각이라 함.(함께 3년 5개월 근무)

"엘란개발팀 팀원들의 현주소"라는 제목으로 막연히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실로 오래 걸릴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만났다 헤어진 것 같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은 우리 팀에 일시적으로나마 합류하여 오직 엘란 개발에만 전념했던 사람들이고,이밖에도 관련되는 수많은 부문의 수백명이 엘란의 개발에 부분적으로 참여를 하였다. 엘란고객이 일년이 지난 오늘 까지 불과 5백여명인 것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동원된 것은 아닌가 싶다. 엘란과 같은 차는 개발/생산/판매/써비스 등 전분야를 망라한 소수정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도...

돌이켜보니, 우리팀엔 내가 합류하여 근무한 3년 5개월동안 모두 23명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중에 전보되거나 원복되어 근무하는 사람이 12명이고, 11명은 자의또는 타의로 퇴직을 하고...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이종호사원 둘 뿐이다.

* 이종호 사원...서울대 대학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후 신입 사원으로 팀에 배치됨.초기에 병역특례로 군대를 안갔다와서 그런지 좌우로 정렬(?)을 잘 못하곤 하였으나 지금은 잘 함. 초기엔 각종 데이타관리와 내장,외장부품의 개발관리를 했고, 국제스포츠카 학술세미나와 신차발표회 등의 이벤트의 기획과 진행에 참여함.(함께 2년 7개월 근무)

* 나?(최윤수과장)...서울대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ROTC 병기장교를 마친 뒤 기아에 입사.본사 C.C.C.(원가관리실)에서 각종 프로젝트의 Cost Control를 5년간 하고, 연구소에 내려와 설계원가부 창설멤버로 있다가 엘란개발팀에서 3년 5개월째 근무중임. 포드자동차및 마쯔다자동차와의 프로젝트를 주로 참여하였음. 평소 신차종 개발을 주도하는 Projet Manager가 꿈이었으나 생각보다 너무 일찍 개발팀에 왔다는 느낌임. 그것도 자동차의 꽃이라 불리우는 스포츠카 개발팀에... 차기 독자 모델에 대한 추진 방향이 불투명해진 요즘 내 자신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는 바람에 솔직히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임."명퇴"도 아닌 "감퇴"가 될런지도 모르니까... (흑흑흑~ T__T)

( 1997. 9.18. cys-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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