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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시도한 정통 스포츠카 개발과 성공..
그리고 잊혀진 이름 "엘란" !!
어느분이 올려주신 엘란 개발기라고 합니다. KIA가 외환위기 전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엘란 개발기인데요.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또,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동회회등을 통해 유지하는 엘란이 대견하여이렇게 올려 봅니다.
<엘란 개발기>
올해 7월 6일은 내가 기아에 입사한 지 만 10년되는 날이었다... 다 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입사 10주년 기념모임을 미루던 차에 뜻밖에 날아든 비보...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선정되었단다.
(신청도 안했는데...) 7월15일이후의 회사생활은 말 그대로 전시상황이다... 아니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는 전시가 더 날것 같다. 삼성의 기아인수 추진사실이 속속 들통나는 가운데, 신임 경제부총리의 강경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여기에 몇몇은행장들은 악역을 자처하고...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환율은 급등하기 시작했고...시중 자금은 경색되어 여기저기 중소업체들의 부도여파가 국가경쟁력의 적신호를 보내고... 정국은 대선준비로 혼미를 거듭하고... 이런 현기증나는 현실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무실에서 더위와의 전쟁을 하며 여름을 다 보냈고...뙤약볕아래서 한여름 햇살을 받으며 여의도,서울역 궐기 대회로 목이 쉬고... 늘상 그러하듯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은 보이지않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쓰러져가는 전우의 시체를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처절한 전쟁인 것이다.
소량의 특수 프로젝트의 특성상 회사내에서 반대와 질시,냉대를 무릅쓰고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엘란개발팀(LCA PM)... 이제 회사의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여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된 것 같다.
개발당시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17명...이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원소속으로 복귀하거나 회사를 떠나고... 며칠전엔 팀장이셨던 전형석 부장님도 감원대상이 되셨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입사 2년된 이종호 사원뿐. 더 이상 팀이 해체되기 전에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스포츠카 역사는 47년이나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이 역사가 불행히 멈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대 MR2를 개발한 도요다의 요시다와 그뒤를 이어 풀모델체인지하면서 완성도를 높인 아리마가 요즘 부쩍 그리워진다. 그들의 보다 철저한 실험정신과 스포츠카 본질에 대한 기본 철학은 나에게 큰 감명이 되었었다.
오늘부터 틈틈이 생각나는 주제별로 다소 두서가 없겠지만 하나하나 역사의 스토리를 펼쳐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진정 이 글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다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의 짧은 글솜씨가 다 받아줄 수 있을런지와 마칠때까지 다 쓸 수 있을런지가 염려스럽다.
< 엘란과 김선홍회장>
내가 엘란을 처음 접한 것은 본사 원가관리실에서 신제품개발원가를 할 때였다. 아마도 1990년초로 기억된다.
당시 회사에선 세피아를 개발하는 한편, 그 세피아를 기본으로 SLC(SPORTS LOOKING CAR)를 검토하였으나 투자비및 시장성이 문제되어 취소되었다. 그무렵 일본의 마쯔다에선 MIATA(MX-5 또는 EUNOS ROADSTER)가 개발되어 대중적 저가형 소형 로드스터의 새로운 장을 열고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었다.
자본및 기술제휴로 여러 프로젝트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마쯔다 에게 기아의 경영진은(들리는 말론 김선홍회장) MIATA를 한국에서도 생산하겠다고 제의하였으나 일언지하의 거절을 당한다. 하지만 MIATA는 영국 LOTUS의 ELAN을 BENCH MARKING하여 가격과 성능을 낮춘 모델로서 진정한 스포츠카로서의 가치는 ELAN과 비교되기 어려운 차라고 볼 수 있다.
MIATA에서 발길을 돌린 김회장은 당시 세피아개발에서 설계일부를 용역 수행하는 로터스에 관심을 두게 되고 자연스럽게 ELAN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었다. 이때가 1990년초였다.
스포츠카의 역사는 어찌보면 자동차 산업의 발전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뒤늦게 자동차산업에 뛰어든 한국은 대량생산과 저가수출에 힘입어 자동차생산 세계10위권 안에 이미 진입하였으나 스포츠카의 역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스포츠카 문화가 성숙된 나라는 엔지니어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수준도 높아 차량제작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운전기량의 향상과 올바른 교통문화의 정착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양적팽창에만 주력해 온 한국의 자동차산업. 결국 세계 자동차 사고 1위라는 불명예는 자동차문화의 질적성장이 미흡함 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지도 모른다.
김회장님은 아마도 당신 자신이 타고난 자동차기술자로서 이러한 사명감을 느끼신 듯 싶다. 하지만 당시의 사내외 분위기는 스포츠카에 대해 무척이나 부정적이었고, 게다가 로터스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평가된 투자수익성평가는 최악이었다.
쌍용에서 영국의 팬더사 인수하는 한편 고전적 스타일의 칼리스타를 내놓고 약50대정도 생산한 뒤 중단한 것도 바로 이무렵으로 기억된다. 칼리스타는 스포츠카로서 갖추어야 할 멋과 맛중에서 멋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차가 아닌가 싶다. 당연히 성능에 있어서는 스포츠카에 대한 막연 한 환상만 간직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혀 들어가긴 어려웠다.
게다가 수작업(Hand-Made) 차량의 품질에 대한 이해부족과 만드는 사람 들의 장인정신 부족,협력업체의 기반,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 등 으로 인해 실패와 생산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한편,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에선 연구소 승용개발부의 전형석과장을 비롯한 몇사람이 KLS(kia lotus sports car) Project라는 명칭을 붙이고 개발기획안을 작성,로터스및 사내 관련부문과 선행검토를 추진하게 된다. 문제는 수량(생산/판매)이었다. 극히 한정된 틈새시장에 투입하는 차량을 위해 수많은 금형을 새로 제작한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인 것이다.
결국은 약 1년여 기간의 검토끝에 이 프로젝트는 관련부문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되고 말았다. 검토 중간에 프로젝트 명칭도 KLS가 아닌 LHT(lotus high tech)로 바뀌기도 했었음에 불구하고... 하지만 김회장마저 스포츠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전형석부장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파리-다카르랠리를 추진하며 스포츠카에 대한 관심과 주변 여건을 조성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1993년초에 스포티지 두대로 참가하여 비록 공식순위에 들지못하는 완주였지만,모터스포츠에 대한 사내외 관심을 형성시키는데는 성공하게 된다.
< 엘란과 닭갈비>
중국의 삼국지에는 『계륵』이란 말이 나온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몇몇 중역분들이 엘란과 기아모텍 매각문제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 아마도 『계륵』 즉,닭갈비와 비유되는 심정일게다. 먹자니 별로 먹을게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하지만 그건 춘천닭갈비가 나오기 훨씬 오래전 옛날 예기라고 본다. 야채와 사리를 얹어 불판에 올려진 닭갈비는 별 비용이 들지 않으면 서도 훌륭한 술안주겸 저녁식사가 되는 요리다.
즉,엘란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리법을 제대로 모르는 채 지금까지 흘러왔다고 본다.
아직 엘란에 대해서는 제대로 요리다운 요리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그 사업성을 논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엘란은 애시당초 기존방식대로 전국 각 지점을 통해 판매되어서는 안될 상품이었다고 본다.
1500여개 지점에서 년간 1대씩만 팔아도 년간 1500대가 팔린다는 단순사고는 이런 스포츠카에선 통할 수 가 없는 논리다. 지금은 전문점의 시대이고 토탈써비스를 원스톱써비스로 제공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라고 본다. 진정 구매력이 있는 카매니아들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우선 잘 훈련되고 이 분야에 정통한 몇사람으로 독립적인 예산운영이 가능한 전문매장을 초기에 서울 한 군데,이듬해는 부산,대전을 추가하고 또 이듬해엔 광주, 전주 등 거점을 늘려 갔어야 했다.
그 거점은 굳이 임대료 비싼 시내가 아니어도 좋다. 어차피 우리나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파는 차가 아니기에 꼭 필요로 하는 한정된 카매니아와 예비 카매니아들만을 대상으로 홍보하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돈주고 광고할 것이 아니라 드라마,영화,잡지등에 차량만 제공하면 광고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 차는 WOM(word of mouth) 효과가 특히 중요한 차이기에 다른 어떤 차종보다 포커스집단내지 또래집단에 대한 판촉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동차동호회나 전문직종인 모임,연예인,은퇴교수모임,스포츠맨,자유 사업가 등등... 전부해서 10,000대를 판다고 볼 때, 성인남녀 2,000명중 한명이 엘란을 소유하게 되는 셈이다. 그 정도의 시장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제대로 요리를 못하고 있을 따름이지...
다음편에서 다른 엘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
그리고 잊혀진 이름 "엘란" !!
어느분이 올려주신 엘란 개발기라고 합니다. KIA가 외환위기 전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엘란 개발기인데요.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또,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동회회등을 통해 유지하는 엘란이 대견하여이렇게 올려 봅니다.
<엘란 개발기>
올해 7월 6일은 내가 기아에 입사한 지 만 10년되는 날이었다... 다 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입사 10주년 기념모임을 미루던 차에 뜻밖에 날아든 비보...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선정되었단다.
(신청도 안했는데...) 7월15일이후의 회사생활은 말 그대로 전시상황이다... 아니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는 전시가 더 날것 같다. 삼성의 기아인수 추진사실이 속속 들통나는 가운데, 신임 경제부총리의 강경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여기에 몇몇은행장들은 악역을 자처하고...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환율은 급등하기 시작했고...시중 자금은 경색되어 여기저기 중소업체들의 부도여파가 국가경쟁력의 적신호를 보내고... 정국은 대선준비로 혼미를 거듭하고... 이런 현기증나는 현실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무실에서 더위와의 전쟁을 하며 여름을 다 보냈고...뙤약볕아래서 한여름 햇살을 받으며 여의도,서울역 궐기 대회로 목이 쉬고... 늘상 그러하듯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은 보이지않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쓰러져가는 전우의 시체를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처절한 전쟁인 것이다.
소량의 특수 프로젝트의 특성상 회사내에서 반대와 질시,냉대를 무릅쓰고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엘란개발팀(LCA PM)... 이제 회사의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여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된 것 같다.
개발당시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17명...이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원소속으로 복귀하거나 회사를 떠나고... 며칠전엔 팀장이셨던 전형석 부장님도 감원대상이 되셨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입사 2년된 이종호 사원뿐. 더 이상 팀이 해체되기 전에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스포츠카 역사는 47년이나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이 역사가 불행히 멈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대 MR2를 개발한 도요다의 요시다와 그뒤를 이어 풀모델체인지하면서 완성도를 높인 아리마가 요즘 부쩍 그리워진다. 그들의 보다 철저한 실험정신과 스포츠카 본질에 대한 기본 철학은 나에게 큰 감명이 되었었다.
오늘부터 틈틈이 생각나는 주제별로 다소 두서가 없겠지만 하나하나 역사의 스토리를 펼쳐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진정 이 글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다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의 짧은 글솜씨가 다 받아줄 수 있을런지와 마칠때까지 다 쓸 수 있을런지가 염려스럽다.
< 엘란과 김선홍회장>
내가 엘란을 처음 접한 것은 본사 원가관리실에서 신제품개발원가를 할 때였다. 아마도 1990년초로 기억된다.
당시 회사에선 세피아를 개발하는 한편, 그 세피아를 기본으로 SLC(SPORTS LOOKING CAR)를 검토하였으나 투자비및 시장성이 문제되어 취소되었다. 그무렵 일본의 마쯔다에선 MIATA(MX-5 또는 EUNOS ROADSTER)가 개발되어 대중적 저가형 소형 로드스터의 새로운 장을 열고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었다.
자본및 기술제휴로 여러 프로젝트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마쯔다 에게 기아의 경영진은(들리는 말론 김선홍회장) MIATA를 한국에서도 생산하겠다고 제의하였으나 일언지하의 거절을 당한다. 하지만 MIATA는 영국 LOTUS의 ELAN을 BENCH MARKING하여 가격과 성능을 낮춘 모델로서 진정한 스포츠카로서의 가치는 ELAN과 비교되기 어려운 차라고 볼 수 있다.
MIATA에서 발길을 돌린 김회장은 당시 세피아개발에서 설계일부를 용역 수행하는 로터스에 관심을 두게 되고 자연스럽게 ELAN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었다. 이때가 1990년초였다.
스포츠카의 역사는 어찌보면 자동차 산업의 발전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뒤늦게 자동차산업에 뛰어든 한국은 대량생산과 저가수출에 힘입어 자동차생산 세계10위권 안에 이미 진입하였으나 스포츠카의 역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스포츠카 문화가 성숙된 나라는 엔지니어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수준도 높아 차량제작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운전기량의 향상과 올바른 교통문화의 정착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양적팽창에만 주력해 온 한국의 자동차산업. 결국 세계 자동차 사고 1위라는 불명예는 자동차문화의 질적성장이 미흡함 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지도 모른다.
김회장님은 아마도 당신 자신이 타고난 자동차기술자로서 이러한 사명감을 느끼신 듯 싶다. 하지만 당시의 사내외 분위기는 스포츠카에 대해 무척이나 부정적이었고, 게다가 로터스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평가된 투자수익성평가는 최악이었다.
쌍용에서 영국의 팬더사 인수하는 한편 고전적 스타일의 칼리스타를 내놓고 약50대정도 생산한 뒤 중단한 것도 바로 이무렵으로 기억된다. 칼리스타는 스포츠카로서 갖추어야 할 멋과 맛중에서 멋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차가 아닌가 싶다. 당연히 성능에 있어서는 스포츠카에 대한 막연 한 환상만 간직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혀 들어가긴 어려웠다.
게다가 수작업(Hand-Made) 차량의 품질에 대한 이해부족과 만드는 사람 들의 장인정신 부족,협력업체의 기반,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 등 으로 인해 실패와 생산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한편,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에선 연구소 승용개발부의 전형석과장을 비롯한 몇사람이 KLS(kia lotus sports car) Project라는 명칭을 붙이고 개발기획안을 작성,로터스및 사내 관련부문과 선행검토를 추진하게 된다. 문제는 수량(생산/판매)이었다. 극히 한정된 틈새시장에 투입하는 차량을 위해 수많은 금형을 새로 제작한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인 것이다.
결국은 약 1년여 기간의 검토끝에 이 프로젝트는 관련부문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되고 말았다. 검토 중간에 프로젝트 명칭도 KLS가 아닌 LHT(lotus high tech)로 바뀌기도 했었음에 불구하고... 하지만 김회장마저 스포츠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전형석부장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파리-다카르랠리를 추진하며 스포츠카에 대한 관심과 주변 여건을 조성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1993년초에 스포티지 두대로 참가하여 비록 공식순위에 들지못하는 완주였지만,모터스포츠에 대한 사내외 관심을 형성시키는데는 성공하게 된다.
< 엘란과 닭갈비>
중국의 삼국지에는 『계륵』이란 말이 나온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몇몇 중역분들이 엘란과 기아모텍 매각문제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 아마도 『계륵』 즉,닭갈비와 비유되는 심정일게다. 먹자니 별로 먹을게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하지만 그건 춘천닭갈비가 나오기 훨씬 오래전 옛날 예기라고 본다. 야채와 사리를 얹어 불판에 올려진 닭갈비는 별 비용이 들지 않으면 서도 훌륭한 술안주겸 저녁식사가 되는 요리다.
즉,엘란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리법을 제대로 모르는 채 지금까지 흘러왔다고 본다.
아직 엘란에 대해서는 제대로 요리다운 요리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그 사업성을 논한다는 현실이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엘란은 애시당초 기존방식대로 전국 각 지점을 통해 판매되어서는 안될 상품이었다고 본다.
1500여개 지점에서 년간 1대씩만 팔아도 년간 1500대가 팔린다는 단순사고는 이런 스포츠카에선 통할 수 가 없는 논리다. 지금은 전문점의 시대이고 토탈써비스를 원스톱써비스로 제공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라고 본다. 진정 구매력이 있는 카매니아들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우선 잘 훈련되고 이 분야에 정통한 몇사람으로 독립적인 예산운영이 가능한 전문매장을 초기에 서울 한 군데,이듬해는 부산,대전을 추가하고 또 이듬해엔 광주, 전주 등 거점을 늘려 갔어야 했다.
그 거점은 굳이 임대료 비싼 시내가 아니어도 좋다. 어차피 우리나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파는 차가 아니기에 꼭 필요로 하는 한정된 카매니아와 예비 카매니아들만을 대상으로 홍보하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돈주고 광고할 것이 아니라 드라마,영화,잡지등에 차량만 제공하면 광고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 차는 WOM(word of mouth) 효과가 특히 중요한 차이기에 다른 어떤 차종보다 포커스집단내지 또래집단에 대한 판촉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동차동호회나 전문직종인 모임,연예인,은퇴교수모임,스포츠맨,자유 사업가 등등... 전부해서 10,000대를 판다고 볼 때, 성인남녀 2,000명중 한명이 엘란을 소유하게 되는 셈이다. 그 정도의 시장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제대로 요리를 못하고 있을 따름이지...
다음편에서 다른 엘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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