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트위터 공동창업자 에반윌리엄스가 특별한 이유?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트위터 창업자는 원래 3명이라고 한다. 비즈 스톤과 에반 윌리엄스, 잭도시로 이루어진 삼각 편대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에반 윌리엄스에 개인적으로 좀 더 집중해 보고자 한다. 




Blogger.com의 성공신화 에반 윌리엄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구글에 인수되 지금도 서비스 중인 Blogger.com의 창업자다. 그가 이런 서비스들을 개발 할 수 있던 배경을 뒤쫒아보면 1996년 그가 일했던 웹 2.0의 대명사와도 같은 기술 관련 콘퍼런스와 책 출판 등을 선도하던 오레일리 미디어에 근무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다. 


그의 당시 이야기를 살펴보면 오레일리에서 처음 입사 당시에는 단순한 마케팅 담당자 였지만 조금식 독립계약자로 위치가 격상되고 코딩도 시작하면서 개발자로 전향하는 듯하다. 물론, 전문 개발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후 프리랜서로 인텔·HP 등에서도 일하면서 Blogger.com 개발을 주도한 멕 휴리한과 함께 피라랩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성공 스토리를 보는 듯한 분위기다. 


피라랩스는 원래 방대한 개인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솔루션 개발이 목표였다고 한다. 그 솔루션의 시제품이 바로 피라(Pyra) 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피라(Pyra)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피라(Pyra) 개발시 문제가 된 노트와 컨텐츠 관리 어플이었던 웹 어플리케이션이 이 회사의 주 개발 프로젝트로 변화하는 계기가 생겼다. 


이것이 바로 Blogger.com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개발과 관련있는 업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회의록, 개발 아이디어, 협의사항, 기획내용등의 다양한 문서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 할텐데 이것을 웹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개발해 보자는데서 출발한게 Blogger.com 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서비스화로 이어 질 수 있었던 건 에반 윌리엄스가 오렐리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웹 2.0 성공과 확산에 대한 철학이 그의 감각에 꽃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게 아니었다 생각된다. 



Blogger.com을 만들다

별도의 웹 어플 형태로 개발하던 것을 개별 프로젝트로 떼어내 개발하며 Blogger. com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블로그 작성과 컨텐츠 발행 및 관리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툴이 없었는데 Blogger.com은 이런 불편을 한번에 해결해 단점을 보완하는 서비스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1999년 8월 일반에 공개됬는데 꽤 큰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문제는 수익 모델 부제와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급기야 공동 창업자 멕 휴리한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회사를 이탈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이때 독특한 투자처를 만나는데 그게 바로 트렐릭스다 이 틀렐릭스에는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댄 브리클린이다. 필자의 블로그를 계속 경청해 왔다면 댄 브리클린... 어디서 들어봤는데 할 것이다. 


필자가 연재중이지만 현재 잠시 중단중인 빌게이츠 이야기 10부에 나오는 "오피스의 역사는 MS가 아닌 Visicalc가 창조했다"의 주인공이기도 한 인물이기도 한데.. 전설적인 인물로 보면 된다. 


댄 브리클린이 8비트 애플 컴퓨터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이었던 비지캘크(VisiCalc)의 개발자였다 소프트웨어 아츠 (Software Arts) 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비지캘크를 개발, 판매하던 댄 브리클린은 1985년에 과도한 차입금으로 인해 회사 운영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을 겪었었고 후에 스프레드시트 시장을 석권했던 로터스 (Lotus)의 미치 (Mitch) 의 투자를 이끌어 내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는데.. 이후 MS Office에 시장을 빼았기게된다.

 

아무튼 자료를 찾아보니 그가 우연히 데이브 와이너의 블로그를 보다가 윌리엄스의 회사 Pyra 가 처한 문제점을 알게 되는데 윌리엄스가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And Then There Was One’ 이란 포스팅에 감동했고 이것이 투자 결정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댄브리클린이 처음 Software Arts 설립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그도 공유했던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투자가 되고 이후 광고 모델로 적용 가능했던 블로그스팟(Blogspot).. 등과 연계점을 찾고 무료 서비스 모델 이외에 유료 모델인 Blogger Pro 모델을 만들면서 수익을 창출했고 이것이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이 모델은 현재 미국에서 유행하는 일정한 무료 이용이외에 통계, 용량, 도메인 지원등의 유료 모델을 지원하는 워드프레스 닷컴등의 수익 모델에도 영향을 미친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구글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에반 윌리엄스

2003년 구글이 피라랩스를 합병되고 Blogger.com을 만들어낸 에번 윌리엄스를 포함한 직원들을 고용됬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1인미디어와 블로그가 시장에 주목을 받으며 주가를 올리기 시작해 Blogger.com 신화를 만들었다. 이런 활약으로 에반 윌리엄스, 멕 휴리한·폴 바우시는 블로그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PC매거진 선정 ‘올해의 인물’에 뽑히는 영광도 누린다.


에반 윌리엄스는 생각보다 큰 꿈을 꾸던 사람이라 2004년 구글과의 계약하며 맺은 스톡 옵션 계약기간이 끝나자 구글을 미련 없이 떠나 ‘오데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2006년 이 회사를 현재 트위터 공동 창업자 비즈 스턴·잭 도시 등과 함께 오비어스라는 회사에 흡수 합병시킨다. 


오비어스에 흡수 합병이후 오데오에서 개발하던 팟캐스팅(Podcasting) 플랫폼 개발에 열을 올렸지만 생각보다 성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려움에 봉착하자 지쳐가고 있을때, 새로운 돌파구를 위한 재미있는 제안을 하게된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유로운 휴식을 갖자고 제안하고 잭 도시와 비즈 스턴이 2주 정도의 시간을 들여 새롭게 데모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트위터의 시초가 된 것이다. 


스톤과 윌리엄스는 당시 내부 연락망으로 트위터를 개설 했고, 이게 모태가 돼 트위터를 만들었는데 트위터는 사용자들이 온라인상에서 140자 이내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시징 서비스로 출발한 것이다. 






혹평받은 트위터의 잠재성을 확인하다

트위터 서비스 개발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단한 인터넷 기반 메시징 서비스 구현을 목표로 했고 아이디어가 나온 지 두 달 만에 트위터 베타 버전이 탄생했다. 그리고 2006년 7월 13일 트위터는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닥 기대를 얻지 못했다. 메신저가 있는데 굳이 트위터를 이용 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에번 윌리엄스는 “아이스크림도 별로 유용하지는 않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 만큼 반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트위터도 이후 여러번의 실험적인 개선과정을 거치며 업그레이드가 됬지만 반응이 없자 그들 스스로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SXSW 2007이라는 미국 서부·남부 지역의 소프트웨어 행사를 통해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몇몇 사람이 좋은 세션의 내용을 요약해서 트위팅하고, 그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이 도구가 많은 사람에게도 유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은듯 하다. 


중요한건 여기서 에반 윌리엄스의 가치가 들어난다. 이런 반응을 보이자. 와~~ 하는 반응만 보인게 아니라 사람들이 트윗팅하던 내용을  대형 전광판을 통해 중계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신기하고 가능성을 높게 봤던지 테크크런치를 비롯한 유명 IT 매체들이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트위터의 가능성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는 우리가 아는대로 허드슨강 비행기 추락사건, 중국 지진, 쓰나미, 미국 대선등.. 의 굵직굵직한 성공을 만들어내며 성공 가두를 달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트위터 이야기를 하는 이유?

세상의 뜨는 서비스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하는 서비스는 자신들이 처음 생각했던 철학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성공 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에서 성공의 빛을 보게된다는 생각이다. 


트위터가 성장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단순한 메시징 서비스에서 기존 장문 형식의 틀을 탈피한 마이크로 블로깅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도 140자로 빠르고, 속보성도 강하지만, 기존 메시전와는 다른 1대 다수의 관계를 만들며 실시간 웹 플랫폼으로 진화 할 수 있었던 거다. 


거기에 마케팅적 감각이 있었던 에반 윌리엄스의 빛나는 감각이 더해져 이런 성공을 가져왔다는 생각이다. 물론 실제 트위터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비즈스톤과 잭도시였을지 모르지만 만약 이 둘이서만 개발했다면 이런 성공을 얻을 수 있었을까?


흔히 우리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는데 개발만이 중요한것도 아니고 기획, 디자인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기술, 기획, 디자인, 마케팅등.. 우리가 서비스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이 잘 맞물려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 트위터 이야기를 했던건 바로 이런 점을 되돌아보고 싶어서이다. 만약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면 현재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남기며 이번글 마무리하겠다. 





[관련글]

-블로거 닷컴, 우연히 탄생한 역사적인 서비스

-앞선 발걸음, 팟 캐스트 서비스 오디오(Odeo)

-2주간의 휴식, 트위터가 탄생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