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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Global, Act Local'  
생산-판매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

글로벌 넘버 원 브랜드 ‘나이키’, 누구나 인정하는 말이다.
세계 스포츠 시장을 석권한 나이키의 역사는 34년에 불과하다.

나이키는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고속 성장을 거듭 지난 2003년 현재 108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나이키는 현재 2만3,0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각국에서 생산,
운송, 판매,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세계 110개국의 영업망과 50개국 400여개의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나이키의 성공 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뛰어난 제품력을 비롯해 튀는 광고와
글로벌 소싱, 브랜드 전략 등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키만의 독특한 글로벌 전략은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 꾸준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생산과 판매 네트워크 구축

나이키의 글로벌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국제적으로 분업화된
생산네트워크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70년대부터 한국, 대만 등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제품을 공급해왔다.

나이키는 이 같은 해외 아웃소싱 국가를 선정하는데 있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기지로서의 이점 뿐 아니라 미래의 판매시장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했다.

향후 현지 생산을 통한 물량 확보는 물론 판매까지 연결되는 완결적인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었다. 생산과 판매, 세계화와 현지화를 한꺼번해 해결한 것이다.

나이키는 또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판매하기 위한 물류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특히 유럽 내 물류를 통합 조정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통망을 하나의 유통센터로 단일화시켜 72시간 이내 제품 배송이 가능하도록 했다.

나이키는 현재 이 같은 물류센터를 20여곳에 운영하고 있다.


공장 없는 메이커 - 아웃소싱 전략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산업으로 분류되는 운동화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 방법은 원가 절감이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글로벌 아웃소싱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나이키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 아시아와 남미,
유럽에 이르는 다국적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다.

이처럼 분산된 생산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나이키는 국외 거주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본사 직원이 현지에 상주하면서 생산과
품질을 관리하는 것.

또 인공위성을 통해 제품 디자인을 현지 생산 공장의 CAD/CAM 시스템으로 전송
신속하고 정확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선주문 시스템(Future Order)
을 가동, 주문량 변동에 따른 생산공장의 위험을 최소화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아웃소싱의 맹점은 핵심 기술이 경쟁사에 노출되거나 파트너들이
이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일이다. 나이키는 이 같은 위험을 막기 위해
핵심 기술을 원천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중요한 핵심 부품은 미국내 자사 소유 공장에서만 생산하는 것.


핵심 전략은 기술

나이키는 공동 창업자인 빌 마우어만에 의해 만들어진 와플 트레이너가 히트를 치면서
빠르게 세를 확장하게 됐다. 와플 트레이너는 와플 제조기에 액체 고무를 부어 고무
스파이크로 만들어진 런닝화. 당시 이 제품은 마찰력 뿐 아리나 쿠션 효과까지 뛰어나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나이키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나이키는 동종 업계 최다수의
디자이너를 확보하고 최대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본사의 스포츠연구소에는 10여명의 연구원이 운동선수들의 신기록 경신을 위한
제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연구원의 40% 가량이 생체공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갖고 있을 정도. 또 일본과 유럽에도 스포츠 연구소를 세우는 등 기술 개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튀는 광고전략

이밖에 나이키는 톡톡 튀는 광고 전략을 펴기로 유명하다. 나이키가 후원했던
테니스 선수인 존맥켄로는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어 늘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또 ‘에어 조던’을 탄생시켰던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에 날개를 달아준 인물이다.

조던은 실력으로서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그가 신던 신발에 대한 일화는
마케팅의 고전으로 인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당시 NBA는 검은 신발 착용을 금지했는데
조던은 한 게임당 1,000달러의 벌금을 물면서 검은색 신발을 신었다.

나이키는 이 같은 마케팅 전략으로 브랜드 가치를 한껏 높였다.

이런 브랜드 가치는 베트남에서 2~3달러에 생산되는 신발을 150~200달러에 판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Think Global, Act Local’

나이키는 세계화와 현지화에 대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광고 전략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이키의 국가별 광고 전략은 TV와 인쇄물에
따라 글로벌과 로컬의 비율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브랜드 이미지 광고는 글로벌로
진행하고 제품 광고는 지역적 정서를 고려 로컬 타깃으로 제작된다.

로컬 광고도 글로벌 컨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연진과 스토리만 변동시키는 방법과
완전히 독자적으로 제작하는 경우로 나눠진다.


나이키 연혁

1962  필 나이트 블루 리본 스포츠(BRS)를 설립,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 제품 수입 계약

1964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이 500달러씩 투자, 새로운 사업 시작(직접 신발 제작)

1970  빌 바우어만 와플 트레이너 개발 시작

1971  나이키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우시(SWOOSH) 개발, 회사 이름 변경,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

1974  와플 트레이너 시판, 미국에서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이 팔린 트레이닝화로 기록.

1979  ‘에어쿠셔닝’ 기술 개발과 이를 장착한 최초의 런닝화 ‘테일윈드’ 출시

1985  마이클 조던과 후원 계약, ‘에어 조던’ 농구화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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