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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원래 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 기업이 이 시장을 무섭게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인텔의 이익은 1984년 2억 달러에 육박하다가 불과 1년만에 200만달러 이하로 추락하는 위기를 만든다. 바로 이것이 일본 전자 기업의 역습 사건으로 일본 반도체가 세계 시장을 휩쓸기 시작한 시점이다. 





일본기업이 일으킨 치킨게임의 시작

그러나 인텔 직원과 경영자는 자신들이 사실상 개척하고 만들어온 시장의 선두 주자로서의 자부심에 빠져있었다. 자신들이 일본 기업에 뒤졌지만, 극복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시장에서 경쟁에 밀렸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철수하는게 쉬운 일일까? 인텔 임직원의 반대도 상당했던 상황에서 앤디 그로브는 큰 결단을 했지만, 인텔의 주주들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던 경영진이 못마땅했다. 


메모리는 원래 장치 산업으로 좋은 제조장비로 많이 찍어내 저렴한 가격으로 수익을 만드는 박리다매식 전략이 주요 전략이었다. 주주 입장에서는 장치 사업이라서 장치 확장과 기술력 개선으로 충분이 이 시장을 유지 할 수 있다고 생각 한 것이다. 


문제는 아직 이 당시의 인텔은 반도체 전문 벤처로 회사가 규모가 커지는 시점으로 성공한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 했다. 하지만 일본의 NEC나 도시바는 이미 당시 인텔을 넘어서는 대형 전자 기업들이었다. 


한마디로 대기업에 속하는 일본 기업들과 경쟁관계가 된다. 이들은 당시 세계 IT 시장을 휩쓸던일본 기업들의 위세와 모회사의 강력한 지원으로 인텔이 할 수 없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량 메모리를 생산하고, 이를 위한 설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간다. 


그리고 초대 메모리 시장의 치킨 게임이 발생하는데, 인텔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인텔이 제시한 가격보다 무조건 10% 할인하는 전략을 하게된다. 



치킨게임에 침몰직전에 몰린 인텔

이런 일본 반도체 기업의 무차별 공격에 인텔은 큰 위기에 몰렸고, 실제 1984년 3개월 동안 메모리 가격이 40% 폭락으로 원가에도 메모리를 팔지 못하는 위기가 된다. 


1985년 상황은 더 악화되는데, 1985년초 256KB 메모리 가격이 30달러대를 유지하다. 수개월만에 3달러100% 폭락해 그 해 영업 실적이 1억 달러 손해로 돌아선다.


엎친대 덥친격으로 HP마저 메모리 반도체 성능에서 미국 기업보다 일본 기업의 성능이 높다며 제품선을 일본으로 변경하면서 큰 위기에 처했다. 


주주들은 규모의 경쟁을 인텔도 시도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지만, 앤디 그로브는 냉철하게 아직 대기업 수준도 아니며, 자금력에서 차이가 큰 인텔이 이 시장에서의 경쟁이 무척 어려울 것으로 스스로 진단하고, 사업 전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당시 CEO가 아니었던 앤디 그로브는 고든 무어 회장을 설득하게 된다. 그리고 주주들의 압박 속에서 앤디 그로브는 창업자라는 프리미엄과 직원들 설득을 통해 지지 기반을 만들고 주주들의 견뎌냈던 것이다. 


공동 창업자들은 기술 장벽이 높으면서 자신들의 기술적 역량을 발휘해 나갈 최적의 시장 찾기에 골몰하는데, 당시 소수의 엔지니어들이 이야기하던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에 눈 돌리게 된다. 


기술적으로 마이크로프로세스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접근법이 틀렸다. 주로 중앙처리장치(CPU)로대변되는 마이크로 프로세스는 기계어로 쓰인 컴퓨터 프로그램의 명령어를 해석하여 실행하는 개념으로 컴퓨터 부품과 정보 교환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HDD와 CPU 사이에서 데이터 전달에 치중한 메모리 반도체보다 미래 시장 가능성과 시장에 대한 기술장벽차가 크다고 예측했고 이 시장에 눈돌리게 된다. 


이런 분석과 예측을 바탕으로 이들은 사업을 전환하기로 했고, 1985년 막대한 적자 이후 8천명 감원등의 극약 처방과 함께 1년만에 체제를 완벽하게 마이크로프로세스 개발 기업으로 전환 시켰다. 



극단적 올인과 편집증적 집중력을 발휘한 앤디그로브

앤디 그로브 주도하에 사업 전환 된후 본격적인 사업 괴도에 오르기까지 5~6년의 세월이 걸린다. 

시간으로 보면 오래 걸린 것 같지만, 삼성이 90년대부터 알파칩 개발등의 독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ARM 기반의 라이센싱 프로세스로 2010년대에 들어서 그나마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점을 생각하면 대단히 성공적인 시장 안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분석하면 첫번째로는 모든 개발조직을 마이크로프로세스 개발에 집중시키고, 8개의 D램 공장중 7개를 마이크로세스 공장으로 전환시켜 배수의 진을 치고 조직을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리딩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시장 차별화 전략을 시도한다. 프로세서 칩 개발 초창기라 경쟁 플레이어의 기술적 수준이 높지 않았고, 대표 경쟁자로 AMD, Cyrix, NexGen의 대표 경쟁자 이외에는 충분히 시장 경쟁을 해볼만한 상황이라 기술적 차별화와 TWO Cycle 개발 전략과 마이크로프로세스 유상 공급 전략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먼저 칩 개발에 대한 차별화는 칩 구조 개선과 사이즈 축소 및 발열 개선에 개발 역량을 집중해 경쟁자보다 경쟁력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스를 개발한다. 

그리고 Two Cycle 전략은 286 프로세스 개발시 별도의 TF팀을 만들어 한세대 앞선 386 프로세스를 먼저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직 대기업 반열까지 오르지 않았고 전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이 취하기엔 상당히 위험한 몰빵 전략으로 도박에 가까운 전략이었지만 이를 성공으로 이끌게 된다. 

또, 원천기술 부족은 생산 공정 기술과 제조 기술 표준화를 통해 원가 절감과 생산 단가 하락을 유도하고, OEM으로 마이크로프로세스를 개발하는 업체들에 유상으로 자신들이 설계한 마이크로프로세스를 공급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전략은 모바일 시장에서 ARM이 모바일에 최적화 된 마이크로프로세스를 일정한 라이선스 비용을 받고 제공하는 전략과 같은 전략으로 삼성이 ARM에서 라이센싱 받아 개발한 엑시노스 생산과 비슷한 접근을 시도했다. 

유상으로 칩 개발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생산 업체들을 끌어들여 표준화를 이끌어 자연스럽게 PC 시장을 인텔 중심의 시장으로 만들어가면서 시장 경쟁자를 퇴출 시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이 괴정에서 인텔 인사이드와 펜티엄 브랜드를 활용한 브랜드 전략도 크게 한몫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과정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역시 앤디 그로브의 과감한 결단과 시장의 일반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시장을 만들어간 고도의 전략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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