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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창업자 이동형씨가 말하는 창업 철학


광파리님 블로그에서 싸이월드 창업자 이동형씨 인터뷰와 관련한 기사 "이동형 대표 페이스북도 모바일 승자 장담 못한다"를 봤습니다. 기사 내용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싸이월드와 미니홈피가 과연 네이버에 인수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 해당 글을 써볼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싸이월드 창업이 이동형씨에 대한 업적이 중점적으로 소개되지만 위키등을 뒤져보고 또 당시 들렸던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동형씨는 결국 다른 사람이 먼저 이뤄놓은 결과물에 운좋게 참여해 끝이 좋았던 분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일한 내용이나 업적을 무시하자는건 아니지만, 그분이 대표가 되고 잘했던건 싸이월드를 SK 컴즈에 인수했고 수익 모델을 만들었던 부분에 관여했던게 엄밀히 말하면 그의 업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출처: 블로터 닷넷 (http://www.bloter.net/archives/10897)



싸이월드 창업 스토리

싸이월드는 원래 KAIST 출신인 이동형, 형용준씨.. 등이 주축이 된 서비스이긴 한데, 싸이월드가 그들의 첫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Wiki백과를 보면 1998년에 서울 홍릉의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이동형, 형용준 등 석박사 과정 6명이 EBIZ클럽이라는 창업 동아리를 결성하고 인터넷 관련 공동 창업을 결정한 것이 이들의 창업의 시초입니다.


이들이 처음 시도한 서비스는 일종의 온라인 광고 서비스였는데 회사 이름이 디지털토네이도였고 서비스명이 애드샷이었습니다. 디지털토네이도 대표가이동형씨 였던거죠. (시초가 다릅니다.)


이렇게 창업을 하던 과정에 형용준씨가 개인적으로 시도한 1촌 관계형 서비스인 "peoplesquare.com"인기를 얻게되는데 이게 싸이월드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피플 스퀘어에 관심을 갖게되 법인 설립을 하고 디지털 토네이도와 싸이월드 팀으로 각각 나뉘는데 싸이월드 팀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분이 형용준씨라고 합니다. 토네이도와 싸이월드 팀은 각각 3명씩 나뉘어 있다가 1999년 9월경 이들이 합쳐 싸이월드란 회사를 설립하고 당시 피플스퀘어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형용준씨와 정태석씨가 공동대표가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서비스의 아이디어뱅크 였던 형용준씨가 싸이월드 성공을 맛보지 못하고 2000년 초반에 싸이월드를 퇴사하고 세이큐피트를 창업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이전인 1999년 12월부터 이동형씨가 싸이월드 단독 대표이사가 되어 2003년 8월 SK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될 때까지 이끌게 되었기 때문에 그를 온전한 창업주로 보는 시각이 맞을 수 있지만, 계류와 족보는 확실히 따질 필요가 있어서 이와 관련해 설명을 드린 겁니다.



한참이나 늦었던 싸이월드에겐 엄청난 경쟁자가 있었다

1999년 창업 당시 싸이월드는 클럽 서비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다음 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2000년에 클럽을 위시한 개인 PIMS, 공유형 게시판, 채팅, 폴(poll: 투표) 서비스 등 커뮤니티 포털 형식을 도입했지만 그닥 반응이 좋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것저것 하다가 안되고 포기 할까 생각이 들때쯤인 2001년 미니홈피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존의 클럽 중심 서비스에서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로 변화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결국 추후 미니홈피가 인기를 끌었고 이를 주도한 사람이 이동형씨라 그의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지고 싸이월드의 공식 창업주가 된 것이지만, 이 싸이월드의 힘이었던 1촌이란 관계를 처음으로 제시한 형용준씨도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국 IT의 인물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싸이월드의 미니홈 프로젝트는 정말 마지막 순강에 이들의 숨통을 띄워준 서비스 입니다. 창업 3년 동안 큰 성장을 하지 못하던 싸이월드는 현금이 거의 고갈 된 상태였고 2001년 여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미니홈피 프로젝트 였던 거죠.


당시 이동형 사장은 기획자였던 이람 팀장(전설적인 인물이죠)을 미니홈피 프로젝트 책임자로 임명했고 그 프로젝트를 통해서 미니홈피, 미니미, 미니룸, 도토리와 같은 현재 싸이월드의 모습이 되는 요소들을 만들들게 됩니다.


그리고 2002년 겨울 즈음부터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2003년경 최대 경쟁사였던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싸이월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었고 본격적으로 성공의 길을 걸으려 할때인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로 인수되게 되며 지금에 이릅니다. 인수 당시 이동형 사장은 SK커뮤니케이션즈 싸이월드 본부장을 맡았다가 2005년 5월부터는 일본 싸이월드의 대표이사로 일하고 이후 2008년 2월 SK커뮤니케이션즈를 퇴사하고 현재 나우프로필을 창업해 활동중입니다.



도토리 도입이 핵심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이동형 대표는 아무래도 수익 모델이었던 도토리에 깊은 애착이 있었는지 이를 강조했지만 이것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을뿐 그 돈을 벌게해준 것은 결국 1촌이란 관계 매커니즘 이었습니다.


SNS의 시초라고 부르는 것에 이의를 다는 분들이 있지만, 가장 인간 사회의 관계형 네트워크 모델을 제대로 구현했고 그 매커니즘이 현재 더 개량화되어 페북 같은 서비스의 성장에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걸 단순하게 무시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델로만 본다면 싸이월드의 관계형 네트워크 모델은 아직까지도 분석할 요인이 많은 꽤 훌륭한 플랫폼인데, 문제는 이 플랫폼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촌 방식의 한계등 최근 지적들이 많이 나오지만 150명 제한이란 요소로 성공한 Path란 서비스를 보면 싸이월드가 죽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란 생각입니다.


싸이월드의 플랫폼적 문제라기 보다는 SK컴즈의 능력 부재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는거죠. 특히 모바일 전환시기를 놓쳤고, 현실에 안주하다 패러다임이 블로그 등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미니홈피의 인기가 극에 달하던 시기라 이에 대한 개선 방향이나 새로운 서비스 전환을 시도 못한 것은 능력 부재로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싸이월드 네이버에 팔았다면?

그럼 성공했을까요? 개인적으로 계속 성공해서 페이스북을 위협하는 존재가 됬을지 모른다는 SF적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절대 못했을 거라 단언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SK컴즈가 미국, 독일, 대만등에 진출하며 실패한 경험보단 나은 경험을 축적하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SK컴즈 시절에 해외 진출 실패를 지역적 특화 서비스를 구축 못햇다고 보는 분들이 일부 있지만, 개인걱으론 이런 요인보다는 오히려 현재 페북 트위터 처럼 독립적인 서버등을 구축해 별개의 시스템화 하는 것이 아닌 원플랫폼 체제를 생각하지 못했다는게 가장 큰 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생이 한국에 와서 미국에서 만난 친구를 싸이월드에 등록 시켰는데 만날 수가 없는 거죠. 왜냐? 서비스는 같은데 미국판 서버와 대만판 서비등이 나뉘어 있었던 겁니다. 페이스북에선 국가나 지역에 상관 없이 서로 교류가 가능했지만 1촌이란 매커니즘을 넘어서 교류 자체에 어려움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저도 몰랐고 그들도 몰랐기에 비판할 꺼리도 못될지 모르지만 당시 그만큼 한국의 인력들의 세계관과 지식적 데이터 축적이 편협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네이버가 인수해도 크게 성공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동형 대표도 싸이월드를 처음에 SK에 팔려던게 아니라 네이버등에 팔고 싶어서 알아보고 다녔다고 했는데, 잘 안된걸 보면 당시 네이버에 있던 사람들도 그닥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해 분석 할 능력이 없었던 거죠.



한국은 왜? 당시 지식적 수준과 세계관이 편협했을까?

미국의 IT 역사를 훓어보면 다양한 합종 연횡과 그들 특유의 오픈된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IT의 원조이고 세계를 이끄는 모든 지식의 보고가 미국에 있었기에 미국에서 그런 지식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각과 토론이 활성화되면서 그렇잖아도 생각이 남달랐던 서구인들이 더욱 깨어있는 사람들로 변한겁니다.


한국은 흥선대원군 시절부터 쇄국정책과 민족주의적 색채가운데 안으로 가두는 문화가 자리했었고, 문화적으로도 하드웨어적인 부분이나 건설 산업 같은 사회 기반 인프라 산업에 강점을 보여왔습니다.


이런 산업들은 일을 하는 체계나 프로세스가 다르고 산업 발전기부터 구축된 상명하달식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페이스북과 같은 세계관을 전혀 생각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건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기에 기본적인 지식이 미국에서 나오다보니 미국에서 새로운 기술과 이론이 산업화가 이루어질떄 우린 그들 논문 보면 분석해 이제 체계화하던 시기라 한발 늦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즉, 마인드의 차이 +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의 차이 + 지식 수준의 차이등으로 문화적인 측면에서 고립을 강조한 한국과 오픈을 강조한 미국이 서비스 확장과 트렌드 리딩에서 현재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 이해가 안가는데 그 차이가 뭔가?

예를들면 미국인들이 한국 클럽에 와서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말을걸고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지만 한국인이 해외에서 이런 해동을 하는 것을 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두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상대에 대한 대담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대상으로 보느냐 마느냐의 차이와 언어적으로 그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상대방을 커뮤니케이션 주체로 끌어 낼 수 있는가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점에서 한국은 그런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거죠. 근데 온라인에서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보자고요. 일단, 언어나 지역에 상관 없이 어떤 관심사나 동질감이 생기면 먼저 이야기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오픈 커뮤니케이션인데 플랫폼적으로 이런 제약이 없도록 설계해야 하는데 지금이야 이런 생각이 보편화 되었지만 싸이월드가 해외 시장에 진출 할때 썼던 플랫폼 전략에는 이런 오픈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았던 겁니다.


생각과 문화적 차이가 하드웨어를 컨트롤 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향성을 갈랐던 겁니다. 싸이월드가 한창일때 마이스페이스가 한국에 못들어온건 이런 문화적 장벽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유학생도 많아지고 국내의 답답한 서비스에 대한 갈증을 가진 얼리어뎁터가 많아지면서 단기간에 이런 문화적 장벽이 해체가 된게 현재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성공 차이를 가르는 기폭제가 된겁니다.


작은 차이지만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겁니다.



네이버가 인수했어도 결국 넘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이유?

당시의 네이버 뿐만이 아니라 IT 인력 대다수가 이런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난 생각을 가진 주체들이 그만큼 부족했고, 인터넷 서비스의 태동 역시 어떤 개발자적 이상향에 기대어 성장했던 것도 그 이상의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생각에 한계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네이버가 인수했어도 현재 미투데이를 서포트 하는 방법처럼 광고하고 네이버 노출을 극대화해 별도의 서비스화 하는 수준에 머무른 거죠. 적극적인 API 정책이나 미투데이의 순 기능을 활용해 카카오톡 같은 기능으로 체재를 변환한다거나 이런게 안보이고 오로지 이미지적 마케팅에 더 주안점을 둔듯한 전술들만 나열해 현상 유지하는 듯한 모습만 보입니다.


하지만 구글등을 보면 철저하게 독립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자신들의 철학을 접목해 더욱 강한 브랜딩을 하면서 마케팅적으로 유저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또, 유튜브 사례를 보듯 매번 새롭게 기능을 추가하고 UI/UX를 개선하고 컨텐츠 풀을 넓히고 있습니다.


과거 인수때 유튜브와 지금의 유튜브는 하늘과 땅차인데, 미투데이 인수때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그닥 차이를 못느끼겠습니다. 디자인정도 바뀌고 네이버에 DB 통합된 수준이랄까요?


백단에서 기술적인 요인등은 개선됬는지 모르지만 개념적으로 서비스의 사용상의 기능이나 아이디어는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네이버는 그런면에서 다소 부족하고 일본에 진출한 마메토가 고전하는 부분도 이미 철지난 지식인 부류의 서비스로 접근하는 안일과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참여형 지식인 모델도 미국에서는 쿼라 같은 모델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지식인등은 이미 수년째 현재의 체제에서 개선된 것이 없습니다.


돈들여 사왔으면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여서 서비스를 더욱 혁신적으로 바꾸면서 브랜딩에 있어서도 그 강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런 현상이 싸이월드에도 고착화 될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점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결론, 싸이월드는 누가 인수했더도 성공했고, 지금과 같은 길을 걸었을듯..

돈을 얼마나 받고 팔게 되느냐? 서비스의 성장 주기상 생명 연장 주기를 얼마나 늘리느냐의 차이가 있을뿐 비슷했을거란 생각입니다. 벤처로 남아있었다면 또 어땠을지 모르지만, 남아서 성공했더라도 비슷하 길을 걸었을 것이기에 별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입니다.


한국이 몇몇 서비스 이외에 지속 성장형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는건 그런 지속 성장형 서비스를 만이 만들만한 체제와 지식/경험이 축적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어쩌면 안타깝게도 그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에 싸이월드가 탄생한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 IT 인력이 이런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경험하며 지속 성장 가능한 서비스를 언젠가 다시 만들어낼 것인데 그런 과정에서 인력들에 대한 자양분적 역할에 머무른 서비스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이스페이스가 불과 몇년전엔 페북보다 더 잘나갔지만 그들의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페북, 트위터가 중간에 흔들릴뻔한 위기를 돌파해 지금의 성공을 나은 것인 만큼 싸이월드도 그런 과정에 있는 서비스였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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