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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획을 그었던 하이텔의 전설, 부활은 꿈으로 남았다.
다 아시다시피 파란닷컴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KTH에 있어서 매출 비중이 높지 않았고 오히려 현상 유지하는 것이 더 부담인 상황이라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데.. 언론들과 파란닷컴 유저들 이외에 그닥 반응이 없는 것 같아서 씁슬하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그런데 어제 페이스북을 보다 KTH의 전 직원으로 현재 다음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분의 향수에 젖은 글을 보게 되어 그와 관련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몇달전 제가 일하고 만들었던 blogkorea.net 이란 서비스가 결국 서비스 운영을 중단하고 다른 회사에 서비스를 이관한다는 공지를 봤을때의 심정이 아니었나싶다.
파란(하이텔)은 저의 첫 직장이었고, 저는 공채 13기였습니다. 그곳에서 멋진 사수들을 만나 일과 인생을 배웠고, 회사에서 보내준 스탠포드대 연수도 다녀왔습니다. 기여한 것 없이 다음으로 떠났었는데, 파란의 서비스가 제 두번째 직장, 다음으로 이전하는군요. 파란에 대해서도 다음에 대해서도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파란 서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파란이 배출한 많은 선후배들이 대한민국의 인터넷을 이끌고 있기에 흐뭇합니다.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란 임상옥의 말이 떠오릅니다. 파란 포털은 사라지지만 파란 출신들은 남아 있습니다. 파란이 모바일에서 꼭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 파란 13기 드림
파란닷컴의 서비스 종료에 대한 내용은 제가 아이엠데이에 기고한 글 "파란닷컴 서비스 중단 선택한 KTH의 탁월한 한수"에 소개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파란닷컴이 서비스 중단하는게 현명한 선택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정리되어 있으니 관련정보가 궁금한 분은 참고하기 바란다.
생각보다 큰 영향 끼쳤던 파란과 KTH
위 이미지는 과거 Paran 닷컴의 모습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KTH는 PC 통신 하이텔을 서비스하던 회사이다. 국내 4대 PC 통신중에서도 가장 인지도와 유저 충성도가 높았던 서비스이기도하다.
하이텔은 1986년 11월 1일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에서 한국 경제 프레스텔(Korea Economic Prestel)을 개통하여 1987년 4월 15일 한경KETEL로 변경, 1987년 5월 1일에는 한경KETEL 영문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1989년 11월 케텔(KETEL) 서비스를 시작함..
이후 한경 뉴스 속보와 대형 BBS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전자게시판(큰마을), 전자우편, 채팅, 동호회(현재의 카페), 온라인 바둑 등을 제공하며 인기를 얻음..
1991년 12월 9일 한국통신과 합작으로 한국PC통신(주)을 설립한 후 1992년 3월 서비스 이름을 코텔(KORTEL)로 변경하고 같은 해 7월에 하이텔(HiTEL)로 변경해 지금까지 Korea Telecom Hitel로 이름 불리어옴..
2000년대 초반 xDSL 기술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하이텔을 운영하던 KTH는 2007년 2월 28일자로, 하이텔 VT 서비스를 전격 중단하기로 결정후 2003년 8월부터 제공되어 오던 하이텔의 웹서비스는 약 1년 뒤인 2004년 7월에 파란으로 통폐합됨..
PC 통신이 뭐 대단한 획을 그었을까 싶지만, 1995년 당시 아는 지인이 PC 통신망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크로드를 개발했는데.. 이 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Hitel에 억대 연봉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았었다.
물론, 인양반이 당시에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자기 교수가 벤처하는데 그쪽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고 거절했는데.. 난중에 아예 쫄딱망해서 본전도 못 얻은걸 생각하면 인생사 새옹지마란 사자성어를 생각나게 했다.
당시 쉘기반의 인터넷 체계가 대세였기 벡터 기반한 그래픽 유저 환경을 제공하는 PC 통신은 어쩌면 신세계였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온라인의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공유하는 곳이었고 지금 말하는 디시급의 문화 난장쯤 되던 서비스 였는데..
이 역시도 패러다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못하다 보니 다음, 네이버등에 완전히 밀리게 된 것이다. 당시 활동하던 유저들이 인터넷 시대가 개박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하류문화가 서비스마다 생겨나고 딴지 일보 같은 하류 인생들의 희노애락을 이야기하는 문화 배설 창구가 생기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PC 통신이 지금의 디씨 문화나 인터넷 문화에 큰 지지 기반이었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파란의 실수
KT에서 한미르로 시작했던 검색 서비스등을 없애고 본격적으로 파란 닷컴을 서비스 했을때 생각보다 큰 돈을 마케팅과 서비스 구축에 투여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비스 초기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이미 다음, 네이버 구도로 고착화되어 가던 시장이라 1년뒤 성장 정체가 시작한 것 같다. 물론, 보는 사람이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생각했고, 그 원인을 검색에서 난 찾고 있다.
심마니, 인포시크, 알타비스타등이 각광 받던 시절엔 검색 엔진의 효용성이 높지 않았고 디렉토리 기반이라 검색 분류 체계나 수준도 높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이 메일과 까페로 다시 네이버가 검색과 지식인으로 시장을 장악하던 시점을 생각해보면 KTH가 좀 더 검색 기술과 한국의 검색 DB 구축에 공을 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출범 초기 지원도 빵빵했을것이라 그 당시부터 데이터 축적을 해왔다면 지금처럼 차별화 걱정 없이 조금은 다른 인터넷 생태계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컨텐츠 강화에 신경 썼지만, 기본 골격과 서비스 구성이 결국 기존 다음 네이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져 모멘텀을 만들지 못한것이 지금에 이르는 패착이 아니었을까 싶다.
KTH 출신 직원이 메시지 되돌아 보기
장사는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하는 그 직원의 외침.. 어쩌면 자신이 속했던 직장과 그 직장이 배출한 선후배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있던 직장을 떠나도 잘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으쓱해지는 그런것과 비슷한 감정교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사람에겐 아마 파란이 그런 직장이었고 그 직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음이란 회사에 뿌리 내린 것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당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그 사실과 내용을 접했다면 오랜만에 술한잔 하자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쉬움과 과거의 향수를 달래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개인적으론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파란에 대한 미련이 크기 않다는 점이다. 직접 관여도 안되어 있고, 오너는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실체는 기업이 추락하고 있었고 서비스의 지원도 다른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던 상황을 생각하면..
그 직원에겐 아쉬움 진함이 남아 있겠지만, 일반 유저에겐 서비스 하나 또 없어지는 군 정도의 감흥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상호의 괴리"로 작용하는게 아닐까?
명맥유지하는 한국 1세대 인터넷 서비스는 어디어디가 있나?
프리챌은 획기적인 커뮤니티 서비스로 2001년 200만 가입자를 유치하며 인기글 구가하다 2002년 유료화 실패와 경영자가 구속되고 경영권 다툼등이 일어나며 실패의 길을 걷게된다. 2008년 동영상 서비스로 반격 노렸지만 결국 지난해 11월 파산했다.
이과정에서 솔본이란 코스닥 업체와 피말리는 경영권 싸움이 화재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솔본의 승리로 끝나고 현재는 웹하드 회사 아이콘큐브에 매각돼 사이트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1997년 설립된 네띠앙은 한국에서 최초로 홈페이지 기반 인터넷 서비스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지만 2006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한뒤 서울이동통신에 인수 된뒤 2007년 네띠앙컨시어지그룹으로 주인이 바뀌고 현재 통합메시징 서비스를 운영한단다.
엠파스는 2000년대 초반 `문장 검색`으로 네이버, 야후코리아를 한때 위협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만년 4위에 머물다 2007년 11월 SK컴즈에 합병됐다. 합병 후에도 사이트는 별도로 운영됐지만 결국 2009년 네이트에 통합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세대중 야후코리아, 아이러브스쿨, 라이코스, 코리아닷컴, 드림위즈 등도 아직 명맥을 유지중이지만 이용자 감소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외에는 디씨, 딴지, 코리아닷컴등도 있지만 디씨와 딴지 같은 커뮤니티 기반이 미디어들 이외엔 존재감이 남아있는 서비스는 그리 많지 않는 것 같다.
한국 1세대 서비스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생각한다. 실취 된 브랜드 이미지는 다시 끌어올리는데 그만큼의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애플처럼 경영자의 능력이 탁월하고 지지기반이 튼튼한 서비스라면 모르겠지만 다시 부활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활하더라도 지금까지처럼 남들 따라하는 서비스 해서는 2~3년내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이처럼 한국 1세대 서비스들이 한계를 맞은 이유가 뭘까? 개인적으론 서비스 패러다임 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했고, 서비스를 발전시킬 방향성을 찾지 못했다는데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다.
드림위지를 예로들면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마니아틱한 커뮤니티를 자사의 서비스로 끌어들이며 틈새전략을 구축했다. 하지만 나름 이름을 날리던 이 서비스들이 오히려 이후 급격히 사용자가 줄어드는 기현상에 빠진다.
안정적 서비스 운영이외에 이 서비스들의 통합을 통해서 검색이 됬든 디씨류의 커뮤니티가 됐든 통합 목표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AOL 과거 포털식 서비스를 제공하던 대표적인 회사로 인터넷 접속이 어려웠던 과거 모뎀을 이용한 다이얼 패드 같은 인터넷 유료 접속 서비스로 성공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유력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 엔가젯, 테크크런치등 수십개의 매체를 인수하며 전문 미디어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시대가 변했을때 자신들의 과거 영화가 아닌 새로운 사업 비즈니스를 어떤 방향에 둘지를 고민하고 전환하는 결단이 필요하지만 이런 부분이 한국 1세대엔 없었던게 아닐까 싶다.
2세대도 마찬가지.. 소신과 가치에 집중하라
현재 뜨는 카카오나 몇몇 서비스들도 앞으로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고유한 철학과 가치를 유지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능동적인 트렌드 캐치와 서비스 개선에 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게 말처럼 절대 쉬운게 아닌줄은 알지만 어려우니 안되라는 말만 되뇌여서는 실패한 1세대 서비스와 비슷한 길을 걸을수 밖에 없게된다.
그런점에서 올블로그는 시사하는바가 크다. 대표적인 메타 블로그 서비스 였지만 실패한 모델이 되었고 이후 두포크와 전문 블로그 리뷰 서비스 Withblog를 서비스하며 체제 전환에 성공했다.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만든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생존하기 위해 끊임 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처럼 돈만은 기업이라면 인수합병을 통해 부족분을 매워가며 성장을 독려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 기업에겐 결국 대기업이나 이미 자리 잡은 기업들이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카테고리를 끊임 없이 개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벤치마킹이란 미명아래 복제를 자행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기 위한 소신과 가치를 키우는 것에 집중한다면 1세대의 경험을 토대로 더 탄탄하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남기며 이번글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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