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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서 적으로 재회한 NHN 공동창업자 이해진과 김범수 대표
2007년 NHN 떠나 카카오톡으로 돌아온 김범수 공동 창업자, 5년이란 세월동안 다시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과 경쟁 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2007년 NHN USA 대표직을 그만둔뒤 3년여가 흐른 2010년 3월경 그는 아이위랩이란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다시 온라인 업계에 등장한다.
소셜 차트 서비스인 위지아, 마이크로 커뮤니티 아지트, 아이폰 전용 마이크로 블로그 카카오수다로 새로운 시도들을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실패하거나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설프군이 분석하기에 이것은 그에게 척박한 IT 현실과 경형환경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취득하는 교육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야인에서 주류로 급부상중인 김범수 대표
위지아와 아지트는 크게 실패한 케이스지만 그가 모바일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아이폰 전용 마이크로블로그인 `카카오 수다'가 SNS 부분에서 판매 1위에 올랐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출발은 카카오수다가 좋았지만 궁극에 김범수 대표가 화려한 복귀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카카오톡'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당시 뜨고 있는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가 많았지만 당시 한국에선 M&talk과 몇몇 서비스가 반짝 인기를 끌다 흐지부지 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시기에 과감하게 카카톡을 밀어 현재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한다.
김범수 대표가 이처럼 모바일과 메시징 분야에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삼성 SDS 근무시절 당시 4대 PC 통신으로 유명했던 유니텔 개발을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대표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의 IT 인생의 시발점은 PC 통신 개발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인터뷰 내용들은 하나 같이 다음과 같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원 시절 BBS(전자게시판시스템, PC통신의 초기형태) 사업쪽으로 창업한 후배 사무실에 갔는데, 이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제가 모르던 세상이 존재하더라고요. '직접 만나서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채팅을 한다? 이게 뭐야, 대체' 싶었죠. 연결된 세상에 대한 첫경험이었죠,.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3개월을 후배 사무실에서 합숙하면서 배웠죠. 졸업하고 컴퓨터 원 없이 쓸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결심했죠."
모바일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관심과 과거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얼굴보며 대화하던 세상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Text로 만남을 경험했고 그것을 실제 PC 통신으로 개발했던 그였기에 그보다 한차원 앞서간 모바일 메시징은 당연히 그가 걸어야 할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해진 평번한 엔지니어에서 "네이버 공화국" 만들기까지..
이해진 현 NHN 이사회 의장이자 CSO 직책을 가진 그는 1967년생으로 올해로 45세이다. 그는 SNU 86학번으로 대학원을 다니며 학사까지 마친뒤 KAIST에서 1992년에 CS로 석사 학위를 받는다.
대학원 랩 생활은 황규영 교수의 DB lab에서 몸담았으며 lab homepage의 Members의 Alumni에서 이해진을 찾아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석사를 마치고 삼성 SDS를 입사해 Naver를 만든다는 스토리는 다 알고 있을 거다.
김범수 대표가 좀 더 감성적이고 도전적이라면 이해진 의장은 좀 더 전략적이고 집중력 있는 스타일이다. 삼성 SDS 근무 당시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기 계발을 통해 근무 시간의 25%를 개인 프로젝트에 할애 했다고 한다.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바로 검색 엔진 프로젝트였고 사내 벤처 1호인 '웹글라이더팀'을 만들어 3년간의 각고 노력 끝에 검색엔진을 개발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엔지니어 출신에 자신의 주 종목이 검색엔진인데, 지금 네이버 검색 품질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사내 벤처로 독립하기 위해 기업이름을 고심하던 끝에 naver라는 이름을 짓고 -"navigate (항해하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로 네이버를 만들고 드디어 1999년 6월 네이버컴(주)를 설립하여 벤처기업으로 독립한다.
그래서 한때 네이버가 삼성의 배경을 등에 업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루머가 나돌았던 것 같다. 암튼, 일반 엔지니어 출신으로 아시아권 탑에 들어갈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창업한 것 만으로도 이미 입지전적인 업적을 쌓았다고 볼 만한 대단한 사람인건 분명하다.
네이버컴과 한게임의 숙명적인 합병
이 둘이 흔치 않은 인연인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Unitel 성공후 게임 개발을 통한 창업을 선택하게 되는데 사채까지 가져다썼기에 수익을 빨리 얻어야 했던 김범수 대표는 PC방 사업까지 했고 PC방 사업이 생각외로 잘되어 PC방을 아내에게 맞기고 자신은 게임을 개발했다고 한다.
드디어 99년 12월 무료서비스를 시작했고 김범수 대표는 전국 PC방에 관리프로그램을 공짜로 깔아주는 대신 한게임을 PC방 컴퓨터의 초기화면에 띄우는 조건을 제시하는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돈주고도 구하기 힘든 관리프로그램을 공짜로 깔아준다니 마다할 업주가 없었고, 이것이 어느정도 성과를 내자 네이버컴의 이해진 대표와 공동마케팅을 진행하게 되면서 다시 관계가 시작된다.
한게임은 PC방 고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서비스개시 3개월만에 무료 회원수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대성공을 거둔다. 서비스개시 한달만인 2000년 1월,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 했다.당시 3개월만에 회원수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닷컴비즈니스에서 사상초유의 일이었고 2000년 2월에는 200만명으로 늘어나는등 한게임은 외형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 2월말, 강남역 인근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김범수와 이해진. 둘은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네이버컴 합병 문제를 놓고, 김정호 당시 NHN 이사의 중재로 협상이 시작된다.
김정호 이사는 삼성SDS를 거쳐 네이버컴에 근무하고 있던 인물로 누구보다도 두 사람을 잘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그 둘의 접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서로간의 역학 관계 덕이었는데 한달간 논의후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을 진행했다.
합병 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함
두 회사는 PC방 공동마케팅을 하면서 서로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꽤뚫고 있었다. 한게임이 인기가 높아져 하루에 10만명씩 회원수가 늘어났지만 한게임 스스로 이정도 트래픽을 소화 할 여력이 안됬던 것이다.
한게임쪽이 절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반대로 네이버는 100억원대의 투자를 성공하고 PC방 마케팅으로 점차 점유율을 높였지만 마땅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금 여력이 없는 한게임은 네이버에 장비를 대여받고 네이버는 부족한 컨텐츠를 매우기 위해 한게임을 무료로 대여해 서로의 이해를 얻어가고 있던 그들은 합병이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매워줄 중요한 단초라고 생각하고 합병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활용해 서비스를 강화 할 수 있었고 반대로 네이버는 수익모델 부재를 한게임을 통해 극복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해진과 김범수
잘 이어 갈것 같았던 그들.. 그리고 꽤 사이도 좋았다고 알려졌던 그들이 갈라선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알려진 부분은 없다. 다만, 2010년경 당시 NHN 창업 멤버중 임원급이 대거 NHN을 떠나는데 파워게임이라거나 내분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미 2007년경 회사를 나왔던 김범수 대표였기에 권력에 의한 파워 게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아마도 서로 회사의 비전을 생각하는 방향은 틀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비전 차이로 약간의 충돌이 있었고, 네이버는 가진걸 지켜야지 더이상 성장 할 수 없는 회사라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퇴임전 NHN USA 대표로 있었는데.. 당시 소문은 팽당해 미국으로 쫒겨갔다는 이야기도 살짝 이었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근무하며 미국 실정에 눈을뜬 김범수 대표가 NHN의 한계를 더욱 절감해 스스로 도전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높아졌고 NHN USA 근무 경험이 기폭제가되 퇴사했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다.
이후 김범수 대표는 많은 실패를 했다. 위지아, 아지트.. 등등.. 알려진 굵직한 것만 3~4개 되는데 이런 실패가운데 버틸 수 있었던건 NHN 성공으로 얻은 100억대의 투자금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여기에 김범수 대표의 인맥이 IT 업계에 있어서 투자금 확보도 조금은 더 용의했기에 그런 고통의 시간을 버티고 카카오톡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이해진 대표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1조 매출과 수천억대 영업 이익을 거두고 실패한 일본에서 라이브도어를 인수하고 마메토를 만들며 어느정도 성과를 만들어낸다. 그런 평탄함이 악이었는지 모바일 대응이 늦고 거만한 네이버와 NHN으로 비쳐지며 2010년 모바일 빅뱅이후 두드러진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해진과 김범수의 대결은 지금부터
그래도 워낙 자금력과 최고의 인력이 버티고 있었기에 현재는 어느정도 모바일과 메시징 분야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일본에서도 큰 성과는 아니지만 점진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다만, 카카오톡이 4000만 넘는 서비스로 커나가며 올해 900억대 투자까지 유치하며 모바일 포털의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게임, 뉴스.. 등 다양한 산업과 컨텐츠 유통과 활용을 논의 중이고 수익모델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아직은 유선웹의 강점과 강력한 검색 점유율을 가진 네이버를 넘어서긴 힘들어도 2~3년내 어느정도 경쟁할 위치에 오를 것 같다는 분석은 쉽게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네이버도 이런 자신들의 결점을 알기에 네이버톡을 만들고 다시 라인을 만들어 3000만명 수준까지 쫒아오긴 했지만 그중 대부분이 일본쪽 이용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시아권을 놓고 경쟁 할땐 괜찮지만 국내 시장으로 한정해 볼땐 네이버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또한, 뉴스 점유율도 하락하거나 SNS 영역에서도 트위터, 페북에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기에 분명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는 한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김범수 대표의 카카오톡과 제대로 된 승부를 하기 위해선 적극 적인 M&A를 통해서 현재의 기술적 혁신적 문제점을 외부에서 찾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김범수 대표도 현재 카카오톡의 부족분을 매우기 위해 900억 가까운 투자금을 잘 활용해 나갈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도 자체적인 개발 인력만 활용한 페스트 팔로우 전략만 따르지 말고 퍼스트 무브 전략으로 먼저 선공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여야 할떄가 아닌가 싶다.
결론낼 수 없어서 이정도에서 끝내지만 분명한 건 지금부터가 이해진과 김범수의 진짜 승부라는 걸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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