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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Microsoft의 전환점이 된 Windows NT 3.1과 윈도우즈에 얽힌 이야기들..
세계의 IT 기업들이 PC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친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전시 산업으로 1980년대를 전후로 해서 IT 기기들을 전시하는 전시회가 생겨나고 이곳에 출품 하는 것이야 말로 IT 기업의 성공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과거 컴덱스 (COMDEX)란 전시회부터 CES(Comsumer Electronics Show)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전시회가 IT 시장 성장과 함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컴덱스보다 먼저 시작된 CES는 가전 성장으로 한때 최고의 IT 전시회로 이름을 날리다가 80년대를 전후로 PC 보급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며 컴퓨터 거래 업체들 중심의 전시회인 컴덱스가 급격하게 팽창합니다.
PC 산업이 2000년대 초반까지 실리콘밸리 성공과 닷컴 버블을 등에 업고 급성장 하면서 컴덱스 역시 최고의 전시회 반열에 올라섭니다. 2000년 당시 25만명을 유치하며 컴덱스는 PC 제조 기업에겐 하나의 성공 신화처럼 비추어졌습니다.
그러나 PC 산업이 쇠퇴하고 IT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와 신소재, 가전, 온라인, 모바일등의 분야로 확산되면서 컴덱스는 급격하게 쇠락하고 되고 결국에는 몰락하고 맙니다.
이후 CES가 가전뿐 아니라 컴퓨터와 홈 오디오와 비디오등의 분야까지 확장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IT 전시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전시회 이야기를 꺼내냐고 궁금하시겠지만 이런 전시회 역시 IT 거장들과 기업들에겐 하나의 능력 과시 무대였기에 소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컴덱스의 독주를 만들어낸 Microsoft와 PC 업체들
CES와 달리 다소 늦은 79년 시작을 알린 컴덱스는 PC 산업의 부흥을 꿈꾸며 초반부터 눈부신 업적을 이뤄냅니다.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의 등장과 함께 최초의 16비트 PC인 IBM PC 5150이 81년 컴덱스에서 선보였으며, XT와 AT 컴퓨터를 거쳐 애플 매킨토시까지 소개되며 PC 산업 전체를 주도하는 전시회가 됩니다.
이로 인해 빌게츠나 유명 경영자들은 컴덱스를 통한 자신들의 신제품을 발표하는 경연장 역할을 하게됩니다.
1983년 컴덱스에서는 빌 게이츠가 MS-DOS 2.0을 처음으로 발표하면서부터 컴덱스는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MS의 성공신화와 괘를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PC 산업의 성장을 배경으로 MS-DOS의 종식을 예고하며 등장했던 윈도우 3.1과 빌 게이츠 스스로 “도스의 시대는 끝났다(DOS is Dead)"라고 말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윈도우 95에 이르기까지 PC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운영체제와 더불어 전 세계 IT 산업의 핵심 기술과 모든 제품들이 컴덱스에서 소개되면서 컴덱스는 가전에 치우친 CES와는 확연히 다른 독자적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던 컴덱스 90년대 후반들어서 전자상거래와 e비즈니스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며 성공의 길을 겉습니다. 당시 컴덱스의 파워를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94년 컴덱스 기조 연설을 맞게 된 빌 게이츠는 6개월 이상을 이 기조 연설을 위해 투자 할 정도로 비중있는 전시회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 했지만 결국 2004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기술이든, 기업이든 시대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진리가 있는 것 처럼 전시회도 그러 했던 것입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MS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주춤한 것처럼 컴덱스도 MS의 성장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Windows 3.0 비상에 도움을 준 애플의 CEO 존 스컬리
Microsoft의 첫 서버용 OS라고 알려진 Windows NT 3.1은 첫 발매일이 1993년으로 15년동안 7번의 버전업을 해왔고 최근까지 Windows Server 2008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플과 룩앤필 소송으로 시작 된 악연은 1997년 까지 이어지고 스티브 잡스 복귀후에 담판 끝에 해결됩니다. 이전 글들에서도 설명 드렸듯 Windows의 탄생은 애플의 당시 CEO 였던 존 스컬리의 역할이 컸습니다. 라이센스를 내줬고 맥 Interface를 포기하는 바람에 맥 특유의 GUI 환경에 대한 특허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인해 존 스컬리가 인정한 라이센스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점을 법정에서 인정하는 바람에 MS의 Windows에 대한 저작권 인정이 안되며 소송은 유야무야 되고, 법원은 두 회사간 계약으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선포해 10년 전쟁도 막을 내립니다.
이 시점을 계기로 MS는 비상을 하는데 저작권등에 대한 부담이 생기지 않자 완벽하게 맥을 모방했고 1990년 MS-DOS에서 구동되는 그래픽 기반 OS의 세번째 버전인 Windows 3.0을 내놓게 됩니다.
Windows NT 3.1 개발 배경
원래는 Windows 3.0 출시 2년전인 1988년에 이미 MS와 IBM은 OS/2 NT라고 알려진 OS/2 3.0 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양사는 DOS기반의 GUI 체제를 털어내고 완벽하게 GUI 중심으로 운영되는 OS를 개발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MS도 부족한 개발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고 이미 시대가 저물고 있는 DOS 시대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속에 DOS 이후의 OS는 OS/2라고 못박은 상태였습니다.
IBM과 협력해 만들던 OS/2는 현대적인 운영체제의 시초가 되는 많은 기술을 축적하는 알토란 같은 프로젝트가 됩니다. OS 기반하에서 소프트웨어와 DOS간 상하방 호환가능한 형태로 개발 된 것이죠.
그런데 Windows 3.0이 이전 버전인 1.0과 2.0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성공을 하게됩니다. 93년까지 2,500만 카피가 팔린 것입니다. 당시 PC 보급율을 생각할때 엄청난 성과였고 이로 인해 IBM과 결별하고 OS/2 NT 개발을 포기합니다.
대신 윈도우즈 3.0 기반의 DOS를 자신들이 OS/2에서 개발하고 있던 NT용 커널로 교체(IBM과 OS/2 NT 개발 당시 NT 커널 개발을 MS 쪽에서 주도해 소스와 라이센스 모두 MS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하는 Windows NT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Windows NT 3.1이 Microsoft에 끼친 영향은?
이미 OS/2 개발 과정에서 OS/2 방식의 운영체제에 대한 가능성과 OS 자체의 안정성을 검증했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만든 NT 커널에 성능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DEC의 데이브 커틀러를 스카웃해 VMS 기반의 Windows NT 3.1 완성합니다 .
다만 1993년 당시 Windows NT 3.1은 DOS 기반으로 이미 개발한 Windows 3.1의 업그에레이드 버전으로 마케팅 할려고 했으나 Windows NT 3.1 성능과 안정성이 PC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WIndows NT 3.1을 서버와 워크스트에션용 프리미엄 제품으로 위치시키고 NT의 퍼포먼스를 개선해 Windows의 라인업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NT는 Windows NT 3.5, 3.51, 4, 2000, 2003, 2008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서버 라인업으로 포지셔닝 되었고 9x 커널에 기반한 DOS 기반 Windows는 3.11, 95, 98, 98SE, Me, XP, VIsta, Windows 7 으로 이어지며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MS는 NT의 가능성을 아주 높게 평가 했던 것 같습니다. NT 플랫폼을 16bit는 물론 윈도우즈 3.0 소프트웨어와 DOS 프로그램, 32bit windows, OS/2, POSIX 까지도 지원하는 범용 OS 계획을 새웁니다.
설계 할때 각 하부시스템은 내부 플랫폼 API 최상단에 위치하여, NT는 이론상 새 API를 올려놓기만 하면 지원이 가능했고 하드웨어 추상레이어도 지원하여 하드웨어 종류에 구애받지 않은 플랫폼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표준 x86 PC 외에, NT는 원래 DEC Alpha와 MIPS R4000 프로세서용으로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Windows NT 3.1의 유래와 숨겨진 이야기들..
그런데 이 시점에 궁금한점이 하나 생깁니다. 최초의 32bit Windows서버 OS였던 Windows NT 3.1이 NT 플랫폼에 있어서 최초의 버전 이었음에도 왜? 버전 명이 3.1이 되었는지, NT의 뜻은 무었인지 궁금해집니다.
Windows NT의 탄생에는 DEC에서 RSX-11M, VAX, VMS이 세가지 운영체제를 개발했던 유명한 개발자인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이 개발자의 뛰어난 능력을 알고 빌게이츠가 삼고초려 끝에 1988년 10월 겨우 MS 품으로 대려오게 됩니다. 프로젝트 진행후 93년에서야 비로소 첫번째 Windows Server OS인 Windows NT 3.1이 발매 되는데 그 이름을 Windows NT로 지은 것은 당시 혁신적인 OS로 새 시대에 신 기술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New Technology라고 표현하고 싶어서 첫자만 따서 NT로 짓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Windows NT, 과연 처음부터 본래 뜻이 New Technology 였을까요?
그렇다면 왜 버전명이 하필 3.1이 였을까요?
WIndows NT가 Server로 명칭을 변경한 이유?
Windows NT 4.0 차기 버전 개발중에 Windows 9X 마케팅 담당자가 NT 사업부로 옮겨 오면서 NT 대신 Windows 2000과 같이 발매 연도를 제품 버전명 대신에 붙이기 시작 했했다고 하네요.
[Windows Server 발매 연도]
Windows에 숨겨진 폴더명과 기능이 특별했던 이유는?
설에 의하면 빌 게이츠는 어려서 몸이 허약해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기 어려웠다네요. 그래서 빌 게이츠는 어렸을적 놀림감이 되기 일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빌 게이츠를 "Print(er)"라 불리우며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심하고 책을 좋아했던 빌 게이츠라 아이들은 글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뜻을 실어 "Print(er)"라고 놀려댄 것이 이런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네요.
이런 빌 게이츠의 왕따 역사는 고등학교에서도 지속되는데 하루는 학교 짱이었던 한 아이가 빌 게이츠를 심하게 비꼬게 됩니다.
"어이 프린터, 너 그래가지고 결혼은 하겠냐?"
"남자가 힘이 없어서 팔다리도 제대로 이용 못해서 쓰겠냐? 너도 남자냐?"
"에이 팔다리보다 XX가 더 큰 문제야, 그거 없이 무슨 낙으로 사냐?"
라는 심한 욕을 들었고 이런 욕에 빌 게이츠도 화가나서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흥분을 못이겨 근처에 있던 의자로 상대를 가격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 과실을 인정받아 벌금형으로 끝나 복귀했지만, 그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아 학교 자퇴까지 하게 됩니다.
이후 그가 MS 설립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아 자신의 최대 약점인 "Printer"란 별명이 생각나는 단어는 Windows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네요.
결국, Windows 3.1 이후 개발 된 모든 Windows 버전에서 PRN(프린터의 약어)이라는 이름을 사용 할 수 없었다고 루머가 있네요.
다만, 이 루머는 루머에 끝날 수 있는 가능성이 다소 있는 것이 PRN은 도스시절부터 컴퓨터 예약 명령어라서 폴더 생성에 사용을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Copy 파일.txt prn 을 하면 파일.txt의 내용이 프린터로 출력되는 형식의 예약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외에도 스티브 잡스를 괘롭힌 CON이란 단어와 AUX, CLOOK 등 여러 단아가 바로 시스템 예약어라 사용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예약어 목록]
하지만 종종 개발자나 창업주들은 시스템 내에 연인의 이름을 넣거나 자신의 삶과 연관된 단어를 구현하는 일을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Windows도 이런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차후 기회가 되면 소개해 보도록 하죠)
성공적인 걸음을 시작한 MS와 빌게이츠
Windows 3.0의 성공이후 MS는 탄탄 대로를 걷고 이후 WIndow 95, 98, ME등을 내놓으며 승승장구 합니다. 이과정에서 하드웨어 제조사에 대한 시장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고, 결국 이런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PC 시장의 표준을 제시하며 천하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은 Window 3.0과 NT 버전의 유래를 살펴보았는데요. 다음 편에서는 좀더 트랜디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글]
1부 - 어린 시절 빌게이츠는 반항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부 - 빌게이츠의 성공뒤엔 평생지기 폴앨런이 있었다
3부 - 빌게이츠 여관에서 MS 창업하다
4부 - 카피캣의 오명 남긴 MS-DOS와 Q-Basic의 진실
5부 -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서로 다른 모방과 창조론
6부 - OS의 역사적 교훈, 주도권 잃은 IBM과 MS의 동맹
7부 - MS와 빌게이츠에 날개 달아준 애플CEO 존스컬리
8부 - IT계의 다스베이더가 된 빌게이츠식 독과점 경영법
세계의 IT 기업들이 PC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친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전시 산업으로 1980년대를 전후로 해서 IT 기기들을 전시하는 전시회가 생겨나고 이곳에 출품 하는 것이야 말로 IT 기업의 성공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과거 컴덱스 (COMDEX)란 전시회부터 CES(Comsumer Electronics Show)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전시회가 IT 시장 성장과 함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컴덱스보다 먼저 시작된 CES는 가전 성장으로 한때 최고의 IT 전시회로 이름을 날리다가 80년대를 전후로 PC 보급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며 컴퓨터 거래 업체들 중심의 전시회인 컴덱스가 급격하게 팽창합니다.
PC 산업이 2000년대 초반까지 실리콘밸리 성공과 닷컴 버블을 등에 업고 급성장 하면서 컴덱스 역시 최고의 전시회 반열에 올라섭니다. 2000년 당시 25만명을 유치하며 컴덱스는 PC 제조 기업에겐 하나의 성공 신화처럼 비추어졌습니다.
그러나 PC 산업이 쇠퇴하고 IT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와 신소재, 가전, 온라인, 모바일등의 분야로 확산되면서 컴덱스는 급격하게 쇠락하고 되고 결국에는 몰락하고 맙니다.
이후 CES가 가전뿐 아니라 컴퓨터와 홈 오디오와 비디오등의 분야까지 확장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IT 전시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전시회 이야기를 꺼내냐고 궁금하시겠지만 이런 전시회 역시 IT 거장들과 기업들에겐 하나의 능력 과시 무대였기에 소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컴덱스의 독주를 만들어낸 Microsoft와 PC 업체들
CES와 달리 다소 늦은 79년 시작을 알린 컴덱스는 PC 산업의 부흥을 꿈꾸며 초반부터 눈부신 업적을 이뤄냅니다.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의 등장과 함께 최초의 16비트 PC인 IBM PC 5150이 81년 컴덱스에서 선보였으며, XT와 AT 컴퓨터를 거쳐 애플 매킨토시까지 소개되며 PC 산업 전체를 주도하는 전시회가 됩니다.
이로 인해 빌게츠나 유명 경영자들은 컴덱스를 통한 자신들의 신제품을 발표하는 경연장 역할을 하게됩니다.
1983년 컴덱스에서는 빌 게이츠가 MS-DOS 2.0을 처음으로 발표하면서부터 컴덱스는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MS의 성공신화와 괘를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PC 산업의 성장을 배경으로 MS-DOS의 종식을 예고하며 등장했던 윈도우 3.1과 빌 게이츠 스스로 “도스의 시대는 끝났다(DOS is Dead)"라고 말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윈도우 95에 이르기까지 PC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운영체제와 더불어 전 세계 IT 산업의 핵심 기술과 모든 제품들이 컴덱스에서 소개되면서 컴덱스는 가전에 치우친 CES와는 확연히 다른 독자적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던 컴덱스 90년대 후반들어서 전자상거래와 e비즈니스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며 성공의 길을 겉습니다. 당시 컴덱스의 파워를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94년 컴덱스 기조 연설을 맞게 된 빌 게이츠는 6개월 이상을 이 기조 연설을 위해 투자 할 정도로 비중있는 전시회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 했지만 결국 2004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기술이든, 기업이든 시대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진리가 있는 것 처럼 전시회도 그러 했던 것입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MS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주춤한 것처럼 컴덱스도 MS의 성장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Windows 3.0 비상에 도움을 준 애플의 CEO 존 스컬리
Microsoft의 첫 서버용 OS라고 알려진 Windows NT 3.1은 첫 발매일이 1993년으로 15년동안 7번의 버전업을 해왔고 최근까지 Windows Server 2008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플과 룩앤필 소송으로 시작 된 악연은 1997년 까지 이어지고 스티브 잡스 복귀후에 담판 끝에 해결됩니다. 이전 글들에서도 설명 드렸듯 Windows의 탄생은 애플의 당시 CEO 였던 존 스컬리의 역할이 컸습니다. 라이센스를 내줬고 맥 Interface를 포기하는 바람에 맥 특유의 GUI 환경에 대한 특허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인해 존 스컬리가 인정한 라이센스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점을 법정에서 인정하는 바람에 MS의 Windows에 대한 저작권 인정이 안되며 소송은 유야무야 되고, 법원은 두 회사간 계약으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선포해 10년 전쟁도 막을 내립니다.
이 시점을 계기로 MS는 비상을 하는데 저작권등에 대한 부담이 생기지 않자 완벽하게 맥을 모방했고 1990년 MS-DOS에서 구동되는 그래픽 기반 OS의 세번째 버전인 Windows 3.0을 내놓게 됩니다.
Windows NT 3.1 개발 배경
원래는 Windows 3.0 출시 2년전인 1988년에 이미 MS와 IBM은 OS/2 NT라고 알려진 OS/2 3.0 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양사는 DOS기반의 GUI 체제를 털어내고 완벽하게 GUI 중심으로 운영되는 OS를 개발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MS도 부족한 개발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고 이미 시대가 저물고 있는 DOS 시대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속에 DOS 이후의 OS는 OS/2라고 못박은 상태였습니다.
IBM과 협력해 만들던 OS/2는 현대적인 운영체제의 시초가 되는 많은 기술을 축적하는 알토란 같은 프로젝트가 됩니다. OS 기반하에서 소프트웨어와 DOS간 상하방 호환가능한 형태로 개발 된 것이죠.
그런데 Windows 3.0이 이전 버전인 1.0과 2.0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성공을 하게됩니다. 93년까지 2,500만 카피가 팔린 것입니다. 당시 PC 보급율을 생각할때 엄청난 성과였고 이로 인해 IBM과 결별하고 OS/2 NT 개발을 포기합니다.
대신 윈도우즈 3.0 기반의 DOS를 자신들이 OS/2에서 개발하고 있던 NT용 커널로 교체(IBM과 OS/2 NT 개발 당시 NT 커널 개발을 MS 쪽에서 주도해 소스와 라이센스 모두 MS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하는 Windows NT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Windows NT 3.1이 Microsoft에 끼친 영향은?
이미 OS/2 개발 과정에서 OS/2 방식의 운영체제에 대한 가능성과 OS 자체의 안정성을 검증했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만든 NT 커널에 성능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DEC의 데이브 커틀러를 스카웃해 VMS 기반의 Windows NT 3.1 완성합니다 .
다만 1993년 당시 Windows NT 3.1은 DOS 기반으로 이미 개발한 Windows 3.1의 업그에레이드 버전으로 마케팅 할려고 했으나 Windows NT 3.1 성능과 안정성이 PC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WIndows NT 3.1을 서버와 워크스트에션용 프리미엄 제품으로 위치시키고 NT의 퍼포먼스를 개선해 Windows의 라인업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NT는 Windows NT 3.5, 3.51, 4, 2000, 2003, 2008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서버 라인업으로 포지셔닝 되었고 9x 커널에 기반한 DOS 기반 Windows는 3.11, 95, 98, 98SE, Me, XP, VIsta, Windows 7 으로 이어지며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MS는 NT의 가능성을 아주 높게 평가 했던 것 같습니다. NT 플랫폼을 16bit는 물론 윈도우즈 3.0 소프트웨어와 DOS 프로그램, 32bit windows, OS/2, POSIX 까지도 지원하는 범용 OS 계획을 새웁니다.
설계 할때 각 하부시스템은 내부 플랫폼 API 최상단에 위치하여, NT는 이론상 새 API를 올려놓기만 하면 지원이 가능했고 하드웨어 추상레이어도 지원하여 하드웨어 종류에 구애받지 않은 플랫폼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표준 x86 PC 외에, NT는 원래 DEC Alpha와 MIPS R4000 프로세서용으로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Windows NT 3.1의 유래와 숨겨진 이야기들..
그런데 이 시점에 궁금한점이 하나 생깁니다. 최초의 32bit Windows서버 OS였던 Windows NT 3.1이 NT 플랫폼에 있어서 최초의 버전 이었음에도 왜? 버전 명이 3.1이 되었는지, NT의 뜻은 무었인지 궁금해집니다.
Windows NT의 탄생에는 DEC에서 RSX-11M, VAX, VMS이 세가지 운영체제를 개발했던 유명한 개발자인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이 개발자의 뛰어난 능력을 알고 빌게이츠가 삼고초려 끝에 1988년 10월 겨우 MS 품으로 대려오게 됩니다. 프로젝트 진행후 93년에서야 비로소 첫번째 Windows Server OS인 Windows NT 3.1이 발매 되는데 그 이름을 Windows NT로 지은 것은 당시 혁신적인 OS로 새 시대에 신 기술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New Technology라고 표현하고 싶어서 첫자만 따서 NT로 짓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Windows NT, 과연 처음부터 본래 뜻이 New Technology 였을까요?
Sankim's Blog의 "Windows NT 3.1을 기억하시나요?"글을 보면 데이비드 커틀러가 DEC에 있었을 때 자신이 만든 VMS의 알파벳에서 한 글자씩 뒤로 옮겨서(V > W, M > N, S > T)를 따서 WNT로 명명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뒤에 밝혀진 내용을 보면 Intel i860프로세서 에뮬레이터 N-Ten에서 유래 된 것이라고 하네요.
Windows NT를 개발할 당시 새로운 인텔 프로세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Intel i860프로세서 에뮬레이터였던 코드네임 N-Ten환경에서 개발했는데 그때 개발자들이 시뮬레이터 이름이었던 N-Ten을 NT라고 줄여 불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NT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다 나중에 Windows NT에 New Technology라는 의미를 부여해 시장에 나온 것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왜 버전명이 하필 3.1이 였을까요?
개발 당시 NT는 16bit 클라이언트용 Windows 3.1이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과의 자유로운 호환성을 제공하는데 좀 더 목표를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NT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Windows 3.1이하 버전에서 설치 되지 않도록 설계 된 어플리케이션 일부가 설치 과정 진행 중에 버전을 확인하면서 1.0이라는 버전명 때문에 3.1 이하 버전으로 인식해서 설치가 실패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3.1이라고 버전명이 부여 된 것이라고 하네요.
WIndows NT가 Server로 명칭을 변경한 이유?
Windows NT 4.0 차기 버전 개발중에 Windows 9X 마케팅 담당자가 NT 사업부로 옮겨 오면서 NT 대신 Windows 2000과 같이 발매 연도를 제품 버전명 대신에 붙이기 시작 했했다고 하네요.
[Windows Server 발매 연도]
1993년 NT 3.1
1994년 NT 3.5
1995년 NT 3.51
1996년 NT 4.0
1999년 Windows 2000
2003년 Windows Server 2003
2008년 Windows Server 2008 (Vista SP1)
Windows에 숨겨진 폴더명과 기능이 특별했던 이유는?
설에 의하면 빌 게이츠는 어려서 몸이 허약해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기 어려웠다네요. 그래서 빌 게이츠는 어렸을적 놀림감이 되기 일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빌 게이츠를 "Print(er)"라 불리우며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심하고 책을 좋아했던 빌 게이츠라 아이들은 글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뜻을 실어 "Print(er)"라고 놀려댄 것이 이런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네요.
이런 빌 게이츠의 왕따 역사는 고등학교에서도 지속되는데 하루는 학교 짱이었던 한 아이가 빌 게이츠를 심하게 비꼬게 됩니다.
"어이 프린터, 너 그래가지고 결혼은 하겠냐?"
"남자가 힘이 없어서 팔다리도 제대로 이용 못해서 쓰겠냐? 너도 남자냐?"
"에이 팔다리보다 XX가 더 큰 문제야, 그거 없이 무슨 낙으로 사냐?"
라는 심한 욕을 들었고 이런 욕에 빌 게이츠도 화가나서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흥분을 못이겨 근처에 있던 의자로 상대를 가격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 과실을 인정받아 벌금형으로 끝나 복귀했지만, 그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아 학교 자퇴까지 하게 됩니다.
이후 그가 MS 설립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아 자신의 최대 약점인 "Printer"란 별명이 생각나는 단어는 Windows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네요.
결국, Windows 3.1 이후 개발 된 모든 Windows 버전에서 PRN(프린터의 약어)이라는 이름을 사용 할 수 없었다고 루머가 있네요.
다만, 이 루머는 루머에 끝날 수 있는 가능성이 다소 있는 것이 PRN은 도스시절부터 컴퓨터 예약 명령어라서 폴더 생성에 사용을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Copy 파일.txt prn 을 하면 파일.txt의 내용이 프린터로 출력되는 형식의 예약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외에도 스티브 잡스를 괘롭힌 CON이란 단어와 AUX, CLOOK 등 여러 단아가 바로 시스템 예약어라 사용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예약어 목록]
CON, PRN, AUX, CLOCK$, NUL, COM1, COM2, COM3, COM4, COM5, COM6, COM7, COM8, COM9, LPT1, LPT2, LPT3, LPT4, LPT5, LPT6, LPT7, LPT8 등이 있고 이런 예약어는 명령 실행에 사용되는 단아로 파일이나 디렉토리 명으로 사용이 부적절한 것이죠.
하지만 종종 개발자나 창업주들은 시스템 내에 연인의 이름을 넣거나 자신의 삶과 연관된 단어를 구현하는 일을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Windows도 이런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차후 기회가 되면 소개해 보도록 하죠)
성공적인 걸음을 시작한 MS와 빌게이츠
Windows 3.0의 성공이후 MS는 탄탄 대로를 걷고 이후 WIndow 95, 98, ME등을 내놓으며 승승장구 합니다. 이과정에서 하드웨어 제조사에 대한 시장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고, 결국 이런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PC 시장의 표준을 제시하며 천하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은 Window 3.0과 NT 버전의 유래를 살펴보았는데요. 다음 편에서는 좀더 트랜디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글]
1부 - 어린 시절 빌게이츠는 반항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부 - 빌게이츠의 성공뒤엔 평생지기 폴앨런이 있었다
3부 - 빌게이츠 여관에서 MS 창업하다
4부 - 카피캣의 오명 남긴 MS-DOS와 Q-Basic의 진실
5부 -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서로 다른 모방과 창조론
6부 - OS의 역사적 교훈, 주도권 잃은 IBM과 MS의 동맹
7부 - MS와 빌게이츠에 날개 달아준 애플CEO 존스컬리
8부 - IT계의 다스베이더가 된 빌게이츠식 독과점 경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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