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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초창기 혼전의 시장에서 Microsoft가 시장 주도권을 얻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작년말부터 올해 중반까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포스팅을 해왔는데 지난달과 이달초는 개인적인 행사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10월이 시작된지도 벌써 5일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혹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이 있었다면 죄송하고 앞으로 진행 될 내용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픽 컴퓨팅(Graphical Computing)시대의 개막
역사서를 보더라도 항상 "몇세기 후반부터 ~ 몇세기 이전까지"와 같이 시대와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하나의 역사적 서사 스토리를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알리고 이해 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일 것 입니다.
오늘은 Microsoft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1985 ~ 1990년 까지를 서사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역사적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PC 시대의 개막을 알린 시기이며 컴퓨팅의 역사에서 Text Computing 시대의 진입을 알린 시점은 1980 ~ 1985년도 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8비트 컴퓨팅의 시대로 정의 할 수 있고 애플2 ~ 3와 디지털 리서치의 CP/M, MS-DOS, IBM의 PC-DOS 시대로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5 ~ 1990년대는 본격적은 그래픽 컴퓨팅의 시대로 16비트 컴퓨팅의 시대입니다. 애플의 맥과 Commodore의 Amiga, Atari ST, 스티브 잡스의 NeXT의 과도기적 시대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90 ~ 1995년대는 IBM과 애플, Microsoft의 본격적인 OS 경쟁의 시대로 Windows가 본격적으로 시장을 주도한 시기로 이 시기에 혁신적인 OS인 BeOS, NeXT Step(Open Step), IBM Taligent등 본격적인 User Interface 기반의 GUI OS 시대가 도래합니다.
보통 이 이후의 시기는 MS가 대부분 시장을 주도했기 때문에 사실 운영체제와 관련한 역사에서는 특별한 이슈가 없습니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론 모바일 운영체제와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등이 새로운 판을 형성하면서 MS에 도전하는 형국이기에 차후 기회가 되면 이 시장도 한번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IT 역사의 한축, 애플에서 쫒겨나서도 괴짜 행동은 멈추지 않아
일전에 작성한 글 "생애 최고의 타짜, 빌게이츠의 세상 지배법 5부"글에서 왜? 애플이 Microsoft의 Windows 개발을 막을 수 없었는지 이야기 했는데요.
당시만해도 스티브잡스가 애플에서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웠던 존 스컬리에 의해서 숙청 당한 이후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고 무력감에 빠져 있을때입니다. 재미 있는 것은 그렇게 숙청 당한 스티브 잡스였지만 애플 초창기 부터 지금까지 아니 애플에서 쫒겨난 순간까지도 그는 IT 역사에서 꽤 큰 획을 그은 인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1981년은 애플이 주식 상장한 년도로 이로 인해 꽤 많은 애플 직원들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도 그중 하나였지만요. 존 스컬리에 의해 쫒겨난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주식을 판 돈 7백만 달러를 들여 NeXT사를 창립합니다.
그의 꼼꼼함과 철저한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졌던 스티브 잡스여서 그랬는지 그는 NeXT사의 로고를 만들기 위해서도 엄청난 열과 성을 다합니다. 유명 디자이너 4명과 면접을 보는 것은 물론 이후 맘에 안들어서 예일 대학의 폴랜드 (Paul Rand) 교수를 찾기까지 했다는 군요.
결국 Graphic Art의 중진으로 있었으며 IBM과 웨스팅하우스의 로고를 만든 그를 섭외하기 위해 IBM 부회장까지 설득해 겨우 Next사 로고를 만듭니다.
잡스 만큼이나 자존심 강하고 오만했던 폴랜드 교수는 이런 단서를 달고서야 로고 제작을 허락했습니다. "로고 디자인은 하나만 만들 것이며 절대 잡스가 마음에 안든다고 말해도 수정은 없다", "그리고 10만 달러를 무조건 선급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라는 조건을 달고서야 제작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잡스는 이를 받아 들였고 결국 위의 이미지가 NeXT사의 로고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입니다. MS 이야기를 하지만 MS 도약기에 꽤 중요한 위치에 있던 NeXT라 언급하지 않고 갈 수 없어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
IT 역사에서 사라질 수 없는 스티브잡스와 NeXT의 이야기
물론, 이 NeXT사는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에서 당시 만들었던 매킨토시의 한계 (소프트웨어적으로 협력사와 함께 만들지 않을 경우 많은 제약이 있었음)로 인해 발전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 판단하고 NeXT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애플의 유능한 몇몇 개발자를 스카웃해와 C언어의 한계를 극복한 객체지향성을 갖는 Object C 기반의 초기 버전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당시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객체 지향성을 갖는 이지웍 기반의 웍크스테이션과 디스플레이와 프린터 운용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넥스트 큐브인데 실제론 크게 성공하지 못해 향후 하드웨어 부분을 매각하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했고 스티브 잡스가 픽사 운영에 집중하려던 시절 애플에 매각합니다.
이후 많은 개발자가 애플에서 NeXT로 넘어가면서 애플의 소송에 휘말려 NeXT의 제품을 워크스테이션 시장에 한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제품을 출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컴퓨터 업계는 모두 NeXT와 NeXT사가 만든 NeXTStep이란 OS를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특히 이들은 마이크로 커널 개념에 기반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을 구축해 다른 언어와 코드 환경을 매우 유연하게 해당 OS에 적용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물론 개발 환경을 제공해 꽤 의미 있는 OS 회사로 IT 역사에 기록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스티브 잡스가 기획하고 플랜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제안들을 아래 직원이 제시 했을때 이해하고 체택 할 줄 알았다는 점으로 스티브 잡스를 판단한다면 꽤 유능한 CEO 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차후 기회가 되면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번외편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고요.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스티브 잡스가 NeXT를 통해서 IT 업계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는 것을요.
IBM과 Microsoft의 동맹
사실 1980년도부터 1987년까지는 엄밀히 말하면 Text 기반의 DOS형 운영체제의 시대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86년부터 애플의 맥킨토시로 인해서 GUI(Graphic User Interface) 환경이 급 부상하고 Microsoft가 Windows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16비트와 GUI 시대의 개막을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MS의 빌 게이츠에겐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서 본 GUI 환경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제대로 이루어 내지는 못했었습니다. 70년대 하드웨어에서 거둔 이윤으로 80년대까지 새로운 애플 컴퓨터에 사용 될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애플의 제품을 단순 모방으로 따라 잡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애플이 제록스 PARC의 GUI 환경을 쉽게 모방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82 ~ 1987년의 Microsoft는 이때까지만 해도 MS-DOS와 디지털 리서치의 CP/M 간 경쟁을 벌이는 시기였습니다. 분명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시장 주도권을 확실하게 쥔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때 빌 게이츠가 애플의 맥킨토시용 GUI를 보고 Windows 1.0을 내놓는데 참혹 할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던 것이죠.
1987년 본격적으로 GUI 환경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 할 때쯤해서 Windows 2가 출시되는데 이때 IBM에서 Microsoft에 동맹을 요청합니다.
IBM은 이미 시장 선도하던 기업이었지만 호환 기종들의 약진으로 다소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애플과 같은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OS를 만들어 카피 본을 만들던 제조사에게 제품을 인증 받는 식의 라이센스로 수익을 확대하려는 의도에 따라 Microsoft와의 동맹을 결심합니다.
IBM의 동맹의 득과 실은?
사실, 이런 동맹이 가능했던 이유와 원인은 결국 애플의 안일한 대응으로 Microsoft가 MS-DOS기반에서 돌아가는 GUI 운영체제를 만들면서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시장이 MS 중심의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IBM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과 자신들의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기회이자 득이라고 판달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Microsoft에게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많은 것을 넘겨주면서 OS/2 1.X 버전 이후로 시장의 관심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 실이라고 판단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IBM이 호환성에 기반해서 PC 시장을 만든 것에 비해서 시장 장악력이 떨어졌던 이유를 살펴보면 MS의 성공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PC 초창기 IBM에 탑제 된 PC-DOS는 MS의 성공을 도왔지만 반대로 OS에 대한 주도권을 MS가 가짐으로 인해서 IBM 제품과 호환되는 많은 카피본만 양산하면서 시장 장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IBM이 만든 OS/2의 몰락은 MS에게도 치명적이어서 좀더 MS-DOS의 수명을 늘리고 싶었던 Microsoft 입장에선 IBM의 OS/2 실패는 MS-DOS 단종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이 꽤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OS/2의 각종 캡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MS의 제품과 동일합니다. MS가 IBM과의 동맹에서 얻은 노하우를 체득하면서 독자 생존의 길을 걸으며 Windows 3.0을 내놓는데 이후 IBM과 동맹이 깨지게 되죠.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85년에 Windows 1.0 을 발표한 후 2.0 을 준비하면서 발머가 IBM 측과 함께 OS/2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따게 되고, 이후 Windows 2.0 의 팀원 대부분이 OS/2 프로젝트로 옮겨가게 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개발진이 IBM과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 할 뿐 실제로 그쪽으로 스카웃 됐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Windows 2.0 과 OS/2 의 인터페이스 유지 정책은 MS 측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표출 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법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이후 IBM은 OS/2를 1996년까지 개발하며 OS/2 Warp을 끝으로 단종시키게 됩니다.
MS는 이후 GUI 체제로 완벽하게 전환하기 위해 DEC에서 고용한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 중심으로 VMS(Virtual Memory System) 체제를 도입하며 Windows NT 3.1을 내놓게 되고 말이지요.
Microsoft의 영악한 마케팅 능력 시장을 좌지우지 하다
당시의 좋은 예를 하나 들어보면 MS가 DOS를 떠나지 않으려 했던 상황을 유독 좋아했던 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MS-DOS의 원형이었던 CP/M을 만든 Digital Research였던 것이죠.
Digital Research는 당장 CP/M을 업그레이드하여 DR-DOS를 1988년에 만들고 이후에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지속하며 MS를 압박합니다. 특히 1990년 5.0으로 나온 DR-DOS는 MS-DOS의 최종버전에 비해서 한수 위라는 평가를 얻을 정도 였습니다.
이때부터 MS의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능력이 발휘됩니다. Microsoft는 MS-DOS 5.0 선보이기 이전에 InfoWorld와 PC Week 등 여러 잡지에 DR-DOS를 압도하는 다양한 신기술과 기능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합니다.
하지만 실제 개발에 착수하기도 전이라 대부분 뻥이었지만 시장은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실 제품은 1년 뒤에나 나왔으나, 이러한 선제 발표는 DR-DOS를 사장 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전략이 워낙 잘 통해서 Microsoft는 1991년 아직 나오지도 않은 MS-DOS 6.0을 갖고 DR-DOS 6을 시장에서 몰아냅니다.
이런 마케팅 능력은 마이크로프로세스의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인텔과 협력하면서 엄청난 성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또, 이 과정에서 MS-DOS 사용자에게 DR-DOS 사용시 호환성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면 기술력 때문에 당장 실현 못할 기술을 약속하기도 하면서 시장을 MS와 인텔 중심으로 흐름을 끌어오게 됩니다.
바로 이 프로젝트가 카이로 프로젝트 였는데 MS와 인텔은 시장에서 당시 구현이 불가능했던 거의 모든 것을 약속해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게 되고 이 시기부터 공고한 윈텔 시대를 예약하게 됩니다.
물론, 카이로 프로젝트는 실패로 봐야 하겠지만 이 프로젝트 하나만으로도 MS가 얼마나 마케팅적으로 교활 했는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관련글]
1부 - 어린 시절 빌게이츠는 반항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부 - 빌게이츠의 성공뒤엔 평생지기 폴앨런이 있었다
3부 - 빌게이츠 여관에서 MS 창업하다
4부 - 카피캣의 오명 남긴 MS-DOS와 Q-Basic의 진실
5부 -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서로 다른 모방과 창조론
6부 - OS의 역사적 교훈, 주도권 잃은 IBM과 MS의 동맹
7부 - MS와 빌게이츠에 날개 달아준 애플CEO 존스컬리
8부 - IT계의 다스베이더가 된 빌게이츠식 독과점 경영법
[참고자료]
http://www.os2bbs.com/os2news/os2history.html
http://www.computerhope.com/history/windows.htm
http://www.pcworld.com/article/191118-5/the_birth_of_windows_from_vaporware_to_reality.html
http://www.appleforum.com/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작년말부터 올해 중반까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포스팅을 해왔는데 지난달과 이달초는 개인적인 행사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10월이 시작된지도 벌써 5일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혹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이 있었다면 죄송하고 앞으로 진행 될 내용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픽 컴퓨팅(Graphical Computing)시대의 개막
역사서를 보더라도 항상 "몇세기 후반부터 ~ 몇세기 이전까지"와 같이 시대와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하나의 역사적 서사 스토리를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알리고 이해 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일 것 입니다.
오늘은 Microsoft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1985 ~ 1990년 까지를 서사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역사적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PC 시대의 개막을 알린 시기이며 컴퓨팅의 역사에서 Text Computing 시대의 진입을 알린 시점은 1980 ~ 1985년도 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8비트 컴퓨팅의 시대로 정의 할 수 있고 애플2 ~ 3와 디지털 리서치의 CP/M, MS-DOS, IBM의 PC-DOS 시대로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5 ~ 1990년대는 본격적은 그래픽 컴퓨팅의 시대로 16비트 컴퓨팅의 시대입니다. 애플의 맥과 Commodore의 Amiga, Atari ST, 스티브 잡스의 NeXT의 과도기적 시대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90 ~ 1995년대는 IBM과 애플, Microsoft의 본격적인 OS 경쟁의 시대로 Windows가 본격적으로 시장을 주도한 시기로 이 시기에 혁신적인 OS인 BeOS, NeXT Step(Open Step), IBM Taligent등 본격적인 User Interface 기반의 GUI OS 시대가 도래합니다.
보통 이 이후의 시기는 MS가 대부분 시장을 주도했기 때문에 사실 운영체제와 관련한 역사에서는 특별한 이슈가 없습니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론 모바일 운영체제와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등이 새로운 판을 형성하면서 MS에 도전하는 형국이기에 차후 기회가 되면 이 시장도 한번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IT 역사의 한축, 애플에서 쫒겨나서도 괴짜 행동은 멈추지 않아
일전에 작성한 글 "생애 최고의 타짜, 빌게이츠의 세상 지배법 5부"글에서 왜? 애플이 Microsoft의 Windows 개발을 막을 수 없었는지 이야기 했는데요.
당시만해도 스티브잡스가 애플에서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웠던 존 스컬리에 의해서 숙청 당한 이후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고 무력감에 빠져 있을때입니다. 재미 있는 것은 그렇게 숙청 당한 스티브 잡스였지만 애플 초창기 부터 지금까지 아니 애플에서 쫒겨난 순간까지도 그는 IT 역사에서 꽤 큰 획을 그은 인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1981년은 애플이 주식 상장한 년도로 이로 인해 꽤 많은 애플 직원들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도 그중 하나였지만요. 존 스컬리에 의해 쫒겨난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주식을 판 돈 7백만 달러를 들여 NeXT사를 창립합니다.
그의 꼼꼼함과 철저한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졌던 스티브 잡스여서 그랬는지 그는 NeXT사의 로고를 만들기 위해서도 엄청난 열과 성을 다합니다. 유명 디자이너 4명과 면접을 보는 것은 물론 이후 맘에 안들어서 예일 대학의 폴랜드 (Paul Rand) 교수를 찾기까지 했다는 군요.
결국 Graphic Art의 중진으로 있었으며 IBM과 웨스팅하우스의 로고를 만든 그를 섭외하기 위해 IBM 부회장까지 설득해 겨우 Next사 로고를 만듭니다.
잡스 만큼이나 자존심 강하고 오만했던 폴랜드 교수는 이런 단서를 달고서야 로고 제작을 허락했습니다. "로고 디자인은 하나만 만들 것이며 절대 잡스가 마음에 안든다고 말해도 수정은 없다", "그리고 10만 달러를 무조건 선급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라는 조건을 달고서야 제작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잡스는 이를 받아 들였고 결국 위의 이미지가 NeXT사의 로고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입니다. MS 이야기를 하지만 MS 도약기에 꽤 중요한 위치에 있던 NeXT라 언급하지 않고 갈 수 없어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
IT 역사에서 사라질 수 없는 스티브잡스와 NeXT의 이야기
물론, 이 NeXT사는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에서 당시 만들었던 매킨토시의 한계 (소프트웨어적으로 협력사와 함께 만들지 않을 경우 많은 제약이 있었음)로 인해 발전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 판단하고 NeXT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애플의 유능한 몇몇 개발자를 스카웃해와 C언어의 한계를 극복한 객체지향성을 갖는 Object C 기반의 초기 버전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당시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객체 지향성을 갖는 이지웍 기반의 웍크스테이션과 디스플레이와 프린터 운용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넥스트 큐브인데 실제론 크게 성공하지 못해 향후 하드웨어 부분을 매각하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했고 스티브 잡스가 픽사 운영에 집중하려던 시절 애플에 매각합니다.
이후 많은 개발자가 애플에서 NeXT로 넘어가면서 애플의 소송에 휘말려 NeXT의 제품을 워크스테이션 시장에 한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제품을 출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컴퓨터 업계는 모두 NeXT와 NeXT사가 만든 NeXTStep이란 OS를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특히 이들은 마이크로 커널 개념에 기반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을 구축해 다른 언어와 코드 환경을 매우 유연하게 해당 OS에 적용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물론 개발 환경을 제공해 꽤 의미 있는 OS 회사로 IT 역사에 기록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스티브 잡스가 기획하고 플랜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제안들을 아래 직원이 제시 했을때 이해하고 체택 할 줄 알았다는 점으로 스티브 잡스를 판단한다면 꽤 유능한 CEO 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차후 기회가 되면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번외편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고요.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스티브 잡스가 NeXT를 통해서 IT 업계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는 것을요.
IBM과 Microsoft의 동맹
사실 1980년도부터 1987년까지는 엄밀히 말하면 Text 기반의 DOS형 운영체제의 시대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86년부터 애플의 맥킨토시로 인해서 GUI(Graphic User Interface) 환경이 급 부상하고 Microsoft가 Windows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16비트와 GUI 시대의 개막을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MS의 빌 게이츠에겐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서 본 GUI 환경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제대로 이루어 내지는 못했었습니다. 70년대 하드웨어에서 거둔 이윤으로 80년대까지 새로운 애플 컴퓨터에 사용 될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애플의 제품을 단순 모방으로 따라 잡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애플이 제록스 PARC의 GUI 환경을 쉽게 모방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82 ~ 1987년의 Microsoft는 이때까지만 해도 MS-DOS와 디지털 리서치의 CP/M 간 경쟁을 벌이는 시기였습니다. 분명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시장 주도권을 확실하게 쥔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때 빌 게이츠가 애플의 맥킨토시용 GUI를 보고 Windows 1.0을 내놓는데 참혹 할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던 것이죠.
1987년 본격적으로 GUI 환경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 할 때쯤해서 Windows 2가 출시되는데 이때 IBM에서 Microsoft에 동맹을 요청합니다.
IBM은 이미 시장 선도하던 기업이었지만 호환 기종들의 약진으로 다소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애플과 같은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OS를 만들어 카피 본을 만들던 제조사에게 제품을 인증 받는 식의 라이센스로 수익을 확대하려는 의도에 따라 Microsoft와의 동맹을 결심합니다.
IBM의 동맹의 득과 실은?
사실, 이런 동맹이 가능했던 이유와 원인은 결국 애플의 안일한 대응으로 Microsoft가 MS-DOS기반에서 돌아가는 GUI 운영체제를 만들면서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시장이 MS 중심의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IBM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과 자신들의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기회이자 득이라고 판달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Microsoft에게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많은 것을 넘겨주면서 OS/2 1.X 버전 이후로 시장의 관심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 실이라고 판단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IBM이 호환성에 기반해서 PC 시장을 만든 것에 비해서 시장 장악력이 떨어졌던 이유를 살펴보면 MS의 성공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PC 초창기 IBM에 탑제 된 PC-DOS는 MS의 성공을 도왔지만 반대로 OS에 대한 주도권을 MS가 가짐으로 인해서 IBM 제품과 호환되는 많은 카피본만 양산하면서 시장 장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IBM이 만든 OS/2의 몰락은 MS에게도 치명적이어서 좀더 MS-DOS의 수명을 늘리고 싶었던 Microsoft 입장에선 IBM의 OS/2 실패는 MS-DOS 단종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이 꽤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OS/2의 각종 캡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MS의 제품과 동일합니다. MS가 IBM과의 동맹에서 얻은 노하우를 체득하면서 독자 생존의 길을 걸으며 Windows 3.0을 내놓는데 이후 IBM과 동맹이 깨지게 되죠.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85년에 Windows 1.0 을 발표한 후 2.0 을 준비하면서 발머가 IBM 측과 함께 OS/2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따게 되고, 이후 Windows 2.0 의 팀원 대부분이 OS/2 프로젝트로 옮겨가게 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개발진이 IBM과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 할 뿐 실제로 그쪽으로 스카웃 됐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Windows 2.0 과 OS/2 의 인터페이스 유지 정책은 MS 측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표출 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법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이후 IBM은 OS/2를 1996년까지 개발하며 OS/2 Warp을 끝으로 단종시키게 됩니다.
MS는 이후 GUI 체제로 완벽하게 전환하기 위해 DEC에서 고용한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 중심으로 VMS(Virtual Memory System) 체제를 도입하며 Windows NT 3.1을 내놓게 되고 말이지요.
Microsoft의 영악한 마케팅 능력 시장을 좌지우지 하다
당시의 좋은 예를 하나 들어보면 MS가 DOS를 떠나지 않으려 했던 상황을 유독 좋아했던 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MS-DOS의 원형이었던 CP/M을 만든 Digital Research였던 것이죠.
Digital Research는 당장 CP/M을 업그레이드하여 DR-DOS를 1988년에 만들고 이후에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지속하며 MS를 압박합니다. 특히 1990년 5.0으로 나온 DR-DOS는 MS-DOS의 최종버전에 비해서 한수 위라는 평가를 얻을 정도 였습니다.
이때부터 MS의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능력이 발휘됩니다. Microsoft는 MS-DOS 5.0 선보이기 이전에 InfoWorld와 PC Week 등 여러 잡지에 DR-DOS를 압도하는 다양한 신기술과 기능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합니다.
하지만 실제 개발에 착수하기도 전이라 대부분 뻥이었지만 시장은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실 제품은 1년 뒤에나 나왔으나, 이러한 선제 발표는 DR-DOS를 사장 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전략이 워낙 잘 통해서 Microsoft는 1991년 아직 나오지도 않은 MS-DOS 6.0을 갖고 DR-DOS 6을 시장에서 몰아냅니다.
이런 마케팅 능력은 마이크로프로세스의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인텔과 협력하면서 엄청난 성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또, 이 과정에서 MS-DOS 사용자에게 DR-DOS 사용시 호환성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면 기술력 때문에 당장 실현 못할 기술을 약속하기도 하면서 시장을 MS와 인텔 중심으로 흐름을 끌어오게 됩니다.
바로 이 프로젝트가 카이로 프로젝트 였는데 MS와 인텔은 시장에서 당시 구현이 불가능했던 거의 모든 것을 약속해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게 되고 이 시기부터 공고한 윈텔 시대를 예약하게 됩니다.
물론, 카이로 프로젝트는 실패로 봐야 하겠지만 이 프로젝트 하나만으로도 MS가 얼마나 마케팅적으로 교활 했는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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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어린 시절 빌게이츠는 반항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부 - 빌게이츠의 성공뒤엔 평생지기 폴앨런이 있었다
3부 - 빌게이츠 여관에서 MS 창업하다
4부 - 카피캣의 오명 남긴 MS-DOS와 Q-Basic의 진실
5부 -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서로 다른 모방과 창조론
6부 - OS의 역사적 교훈, 주도권 잃은 IBM과 MS의 동맹
7부 - MS와 빌게이츠에 날개 달아준 애플CEO 존스컬리
8부 - IT계의 다스베이더가 된 빌게이츠식 독과점 경영법
[참고자료]
http://www.os2bbs.com/os2news/os2history.html
http://www.computerhope.com/history/windows.htm
http://www.pcworld.com/article/191118-5/the_birth_of_windows_from_vaporware_to_reality.html
http://www.apple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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