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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에서는 마리사 메이어가 왜? 공학도가 되었는지 살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라 그녀 성향 자체가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컴퓨터나 과학/수학 과목에 관심이 많았고, 이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좋은 느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녀의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는데 크게 도움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통계적학적으로 보면 보통의 여학생은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 기준으로) 2003년학년도 미국 수능 시험(SAT)을 본 고등학생 중 컴퓨터 전공에 관심있던 학생 84%가 남자로 조사됐다. 반면, 이 영역에 관심있는 여학생은 16%였다. 


하지만, 마리사 메이어는 이런 유형과 거리가 멀었다. 


마리사 메이어는 "수학과 과학 영역에서, 다른 여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쪽이었다. 하지만, 수학/과학 과목을 좋아하는 여학생이 일반적으로 드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따분한 수학/과학광 같은 느낌이었다", "모교는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차별 없이 수학/과학을 지원해 이상한 감정을 받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마리사 메이어 트위터]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마리사 메이어의 수줍은 성격은 이런 학교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선생님의 보편적인 대우가 그녀의 컴플렉스 극복에 한몫했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가방, 책상, 숙제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조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마리사 메이어는 이런 상황을 통해 사람을 꾸리고 조직 할 수 있은 리더의 역할을 경험했다. 


피아노 선생이었던 베크먼(Joanne Beckman)의 증언이 이를 믿받침하는데, "사람들이 무슨일을 왜? 하는지 알고자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전했다. 


"마리사 메이어 나이대 학생은 자기 자신에 더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녀는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관심있게 쳐다 봤습니다"


관찰 대상은 학생뿐만이 아닌 선생들에게도 해당 됐다. 이런 행위는 그들이 어떤일을 왜하고, 무얼하는지 알아내기 위한 그녀의 접근법이었다. 메이어는 선생님 역할을 관찰하고 간접 경험하면서 수줍은 성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런 그녀의 성향을 지켜본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었던 플래너건 선생은 그녀에게서 교육자의 자질을 봤고, 언젠가 선생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선생님으로부터 리더쉽을 경험한 마리사 메이어는 고등학교 시절 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스페인어 모임 부장, 동아리 회계 담당, 토론팀의 팀장.. 등 가입한 모든 클럽에서 리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제일 친한 친구로 알려진 아비게일 가비 윌슨은 이런 증언을 했다. "마리사 메이어는 댄스 동아리에서 주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장이 되기 위해 그녀는 3가지 방법을 이용해 회장이 되었다"


"첫째 이유는 그녀의 순수한 능력이었다. 훌륭한 안무를 짜는 능력이었고, 둘째 이유는 모든 팀원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열정과 노력을 다했다. 세번째 이유는 공정함이었다. 친분이나 인기가 아닌 제일 실력 있는 사람을 선발해 팀을 꾸렸던 것이다"


마리사 메이어의 이런 치밀함은 1993년 대학 합격에서도 들어난다. 그녀는 하바드, 예일, 듀크, 노스웨스턴 등 10여개 학교에 당당히 합격했다. 일반적인 학생은 주변 의견이나 인기에 따라 대학을 결정했겠지만 그녀는 공정한 결정을 위해 스프레드시트에 다양한 변수를 입력해 문제를 따져봤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스탠퍼드대를 선택했다. 스탠퍼드 입학 직전 여름 메이어는 대학에서 뭘 할지를 스프레드 시트에 기록하며 다양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이 고민들에 영향을 미친건 준 응구옌(Zune Nguyen)이 초빙 강사로 참여한 웨스트버지니아의 전국 청소년 과학캠프가 였다. 이 행사는 과학광들이 모였고, 그들이 모인 곳은 사진 과학 연구실로 나무로 만들여져 숩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때까지만 해도 교육과정쪽이 아닌 신경정신과 의사가 될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마리사 메이어는 콘스타치와 물을 썩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찐득한 물체를 만드는 실험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 예일대 출신으로 포스트닥 과정에 있었던 이 준 응구옌(Zune Nguyen)이  제시한 다양한 수수께끼와 퍼즐로 놀라움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수수께끼와 퍼즐에 마리사 메이어 이외의 모든 학생이 빠져 있었고 응구옌의 강의는 매번 만원이었다. 아이들이 수수께끼와 퍼즐에 매진하고 있을때 이 행사를 맡은 고문이 중단을 알리고 이런 의견을 던졌다.  


"준 응구옌이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그의 말은 이런 의미였다. 응구옌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그가 문제에 접근한 방식이었다. 응구옌은 새로운 환경과 문제에 놓였을때 해당 문제에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관찰을 통해 어떻게 극복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틀에 밖힌 방법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하는 습관을 이야기 했다.



이 때부터 마리사 메이어는 캠프의 캐치프레이즈를 "준 응구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라고 인식하고 개인적인 가르침으로 생각했다. 



가을 그녀는 스팬퍼드에서 의학과를 시작했지만, 이 캠프의 활동 때문인지 1학년 말이 될때쯤 의학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의학은 암기 과정이 많았어요. 쉽기는 했지만 암기 이상은 아니잖아요?"


그녀는 "자신을 정말로 생각하게 만드는 전공을 찾고 싶었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위대한 해결자로 훈련 시켜줄" 전공을 원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이 생각하고 사고하는 방식, 표현하는 방식"을 연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전산학 입문 과정인 CS105를 찾게됐다.


이런 선택에는 응구옌이 가르쳐준 가르침인 "준 응구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 중요하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마리사 메이어는 프로그래밍 영역에 몰두했고, 다양한 문제를 자기 머리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원래 전산학 전공이 아니었던 그녀는 학기 동안 추가 학점을 얻기 위해 수업시간에 열린 디자인 컨테스트에도 참여했다. 이 컨테스트에서 그녀는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스크린세이버를 프로그래밍화 했고, 수업을 듣던 300명중 2등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크린세이버의 디자인도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CS105의 교수였던 로버츠(Eric Roberts)는 수 학기 동안 메이어가 만든 스크린세이버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스탠퍼드대 에릭 로버츠교수 - 비즈니스 인사이더]




이 과정에서 CS105의 로버츠 교수의 관심을 얻어냈는데, 그는 마리사 메이어가 만든 불꽃놀이 스크린 세이버에 감동받게 되었고, 이후 다른 입상자들과 마리사 메이어를 자택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로버츠 교수는 마리사 메이어의 멘토가 됐고, 다른 교수들과 인맥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됐다. 


이 컨테스트는 마리사 메이어에게 맞는 전공을 찾는데 도움을 줬는데, 그녀는 심볼릭 시스템 전공을 선택하게 됐다. 해당 전공을 공부 할 경우 언어학, 철학, 인지 심리학, 컴퓨터학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런 교육 과정 덕택인지 실리콘 밸리에서도 스탠퍼드의 심볼릭 시스템학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실리콘 밸리에서 이 심볼릭 시스템학 출신으로는 LinkedIn의 공동 창업자인 호프먼(Reid Hoffman), 애플 iOS 소프트웨어의 전임 수석 부사장이었던 포스탈(Scott Forstall), 인스타그램의 공동 창업자인 크리거(Mike Krieger)가 해당 전공 출신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마리사 메이어의 교육자적 자질은 이 정공을 통해서 표출되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들었던 철학 수업인 160A를 들을때 일이다. 이 수업은 심볼릭 전공자에게는 일종의 "버리는 수업"으로 여겼다. 


160A 수업은 수강생들을 대여섯게 조로 나누어 문제를 유형별로 푸는 수업을 진행했다. 특별히 마리사 메이어가 끼여있는 조는 다른조들에 비해서 문제를 하루 일찍 풀어냈다. 이런 성과는 그녀가 속한 그룹이 밤새 160A 수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벤처 투자자로 유명한 조시 엘먼(Josh Elman)도 마리사 메이어와 같은 그룹에 있었는데, 엘먼은 당시 상황을 조원들이 거의 미칠 지경으로 몰았다고 증언했다. 


"마리사 메이어는 항상 '좋아를 외치며, 이제 다시 합시다. 이걸 해 내야 하니까'라고 외쳤다. 올바른 답을 빠르게 얻는데 그녀가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룹에서 마리사 메이어는 항상 뛰어나고 늘 진재했어요. 심각하고 영리함이 그녀에게 느껴졌던 거죠"


그녀가 속한 그룹내에서 조원과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녀는 해당 그룹을 사업적 형태로 구성해 호령했지만, 나서지 않아도 되는 순간엔 늘 수줍고 쓸쓸해 보였다. 그녀는 권위에 대한 의지와 고통스러운 양면성이 있었고 이것이 마리사 메이어의 최대 문제로 대두됐다.


이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마리사 메이어가 수줍어하는 행동을 한 대학 동창은 "거만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그녀는 떠나버렸다. 보통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피자도 마시지만, 그녀는 일이 끝났다는 이유로 사라져 버렸다"


실제 마리사 메이어는 대학 내에서 친교 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증언자에 따르면, 마리사 메이어는 항상 "학업에만 열중할뿐,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그녀는 기숙사에서 친구를 새로 사귀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항상 뭔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죠."


스탠퍼드 시절 메이어의 사교성은 형편 없었다. 당시의 그녀를 요약하면 "고통스러울 정도의 수줍어했다"로 정의 할 수 있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이후 그녀는 친교 활동이 적으면서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는 그룹에 포함됐고, 이것은 그녀가 심볼릭 시스템 선배로서 강사가 되는 계기가 됐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가르쳤고, 이런 발전에는 컴퓨터학과 교수였던 에릭 로버츠 교수의 역할도 한몫했다. 


로버츠 교수는 마리사 메이어의 멘토로서 그녀의 강의를 관장하며, 그녀가 올바로 교육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이런 그녀에 대해 로버츠 교수는 "정말 강의를 효율적으로 잘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조교등으로 활동한게 아닌가 생각됨)


봄 학기 이후 로버츠 교수는 학생 상대로 강의 평가를 진행했는데, 마리사 메이어에 대해서 "분당 1마일의 속도로 말을해도 학생들이 메이어를 좋아했다"고 전했다. 


좋은 강연자로 인정받아서 여름학기도 강의하라고 전하며 스탠퍼드에 남을 것을 제안 할정도였다. 이런 변화는 160A 수업을 통해 그녀가 한단계 진화한 것을 말한다.  


마리사 메이어는 남은 학과 과정도 훌륭하게 이수한 뒤 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녀는 학교에 남아 컴퓨터학 석사를 이수하기로 했고, 세부 전공으로 인공지능을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 시점이 다가왔다. 그녀의 졸업 시점에 이미 그녀에 대한 강의 능력은 명성이 자자 할 정도였다. 


그녀는 졸업이후 교육자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새로운 역할에 도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해당 글은 iamday.net의 IT칼럼 (http://www.iamday.net/apps/article/talk/2949/view.iamday)에 기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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