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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에서는 마리사 메이어에 대해서 소개 될 예정입니다. 1편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초장에는 마리사 메이어가 어떻게 야후 CEO 오퍼를 받고 어떤 과정으로 선임 됐는지 소개됐다면 2편부터는 그녀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단순한 마리사 메이어의 야후 CEO 취임을 소개한 글이 아니며, 그녀의 작은 전기에 가까운 글입니다. 또한, 이 글은 당초 3편정도로 축약해 소개 하려고 했으나 양이 많은 관계로 편수가 더 늘어날 수 있으니 이점 유념해 주시고, 이글이 연재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비즈니스 인사이더]



이제 38세인 마리사 메이어는 부자이며, 아이들의 어머니, 훌륭한 엔지니어이면서 300억 달러 규모의 기업 CEO 이다. 남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Tech 업계에서 흔치 않은 여성 지도자다. 


마이어는 3억 달러 규모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임에도 자신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샌프란 시스코의 Four Seasons Hote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가 교회의 사과 나무가 있는 작은 집에 거주하는 것과 차별화된다.  


페이스북 마그 주크버그나 구글 래리 페이지는 최고 IT 기업 CEO 임에도 슬리퍼에 후드티를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메이어는 붉은 카페트 위에서나 입을 것 같은 Oscar De La Renta를 입고 다닌다.


마리사 메이어는 스스로를 Geek으로 칭하지만 적어도 외모로는 그리 보이지 않는다. 금발과 푸른눈의 우아한 그녀의 스타일은 헐리우드 여배우에 더 가깝다.


젊고 강력하며 부자이고 영리한 메이어는 수 백만 여자들의 롤모델이다. 그렇지만 페이스북의 COO, 셔릴 샌버그(Sheryl Sandberg)와는 달리 그녀는 전세계의 일하는 어머니들을 격노 시키기도 했다. 야후 직원들의 가택 근무를 금지 시켰기 때문이다.


많은 대중이 그녀를 존경하지만, 적대시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마리사 메이어를 로봇 같고 거만하고, 세세한 것에 너무 집착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용자 경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수익을 위한 비즈니스를 무시하는듯한 행위를 자유롭게 만들어 줬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렇지만, 마리사 메이어의 야후 취임 1년뒤 주가는 100% 상승했고, 야후를 떠나던 엔지니어들이 야후를 다시 찾게 만들었다. 텀블러 창업자 카프(David Karp) 같은 경우, 자신의 회사를 야후에 팔게 만들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야후 규모의 회사 경영자는 대부분 사교성과 외향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사업과 돈이 아니라면 정치인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마리사 메이어는 정치가 같은 타입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후 취임 1년의 인생을 살펴보면 마리사 메이어는 수줍음이 많고, 사교성이 없는 인물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녀를 잘 모르는 경우 구글에서의 성공만을 봤을 테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리사 메이어는 구글에서 훌륭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의 구글 웹사이트와 제품 관리 구조는 그녀에 의해 기초를 쌓았고 이런 성과는 그녀를 구글의 얼굴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그녀보다 동료들이 승진하기 시작했다. 구글 제품의 모든 전략 (룩앤필)을 책임지는 자리마저 빼았겼다. 그녀는 (구글내에서..) 덜 중요한 구글맵으로 좌천 됐고, 구글 CEO와 대면하는 수석 경영진 회의에서도 배제됐다. 업계의 소식통은 마리사 메이어의 입장을 강등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 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왜? 그런일이 일어났는가? 또, 어떻게 이를 극복해냈을까?


모든 사람들은 2012년 여름에 있었던 마리사 메이어의 좌천은 충격이었다. 그녀에게 야후를 이직을 설득한 사람들 조차 마찬가지였다. 야후 이사진은 어떻게 그녀를 설득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녀는 야후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비즈니스 인사이더]



마리사 메이어는 핀란드 출신의 예술 선쟁인 엄마 마가렛 메이어와 환경 엔지니어인 마이클 메이어의 딸로 1975년 5월 30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위스콘신 Wausau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마리사 메이어는 국립학교를 다녔다. 식료품점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지만, 이것이 그녀의 가정이 서민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하기에 모자람 없는 가정이었고, 그녀에겐 혈육인 남동생 메이슨 메이어가 어린시절을 함께했다. 


현재의 마리사 메이어에 대한 사진은 언론이 무대, TV 등에서 청중 앞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녀는 보통 디자이너가 제작한 드레스를 즐겨 입고 자신의 이미지를 만든다. 


38세의 마리사 메이어는 현재 그녀는 대단한 인물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과 10대 시절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수줍음이 있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최근의 마리사 메이어 사진은 어린 시절 친구들이 기억하는 메이어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티셔츠에 스웨터,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호화롭지는 않았다. 청중 앞에서는 지금처럼 말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어린시절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전혀 외향적 성격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조제이드(Brian Jojade)라는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중2 때 마리사 메이어와 함께 고급수학 수업을 들을때 마리사 메이어는 타인의 관심을 싫어했다고 기억했다. 일례로 한 번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메이어의 생일이라 알렸는데, 마리사 메이어를 좋아해 이름을 소개해 웃게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별로 재미 없는 일이었다."는 증언을 했다.


그에게는 마리사 메이어에 대한 다른 추억도 있는데, 메이어는 공부 할때 만큼은 남달랐다는 증언이다. 뭘하든 정직하고 곧바르게 하려했으며, 매우 열정을 가진 소녀였다. Wausau West 고등학교 동창인 배즈터(Elize Bazter)는 메이어가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공부 할때 만큼은 대화를 끊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Wausau West 고등학교는 수업이 40분에서 1시간 가량 진행후 20분 휴식을 갖는 클래스 운영을 했고, 20분의 시간은 대부분 식당에 모여 친구들과 먹고 떠들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마리사 메이어만은 식당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마리사 메이어는 자판기와 식당에서 간단한 요기거리를 가지고 도서관이나 실험실에 공부하러 갔다. 20분의 휴식 시간에도 떠들거나 노는 아이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배즈터는 이런 마리사 메이어를 두고 "학교에서 항상 손에 책을 든 채, 뭔가 하려고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로 기억했다. 이런 것만 보면 마리사 메이어가 외롭고 슬픈 청소년기를 보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2010년, 메이어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Wausau School District의 졸업생 명예의 전당에 올랐기 때문이다. 같은해 학교에서는 25명의 교사 은퇴식이 마리사 메이어의 명예 전당 헌액 기념식과 같이 열렸는데, 이 행사의 연설 영상이 녹화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영상 기록에서 마리사 메이어는 노란 꽃 장식이 붙은 파란색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고 연단에 올라 다음과 같은 연설을 진행했다.


"모두들 제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생님 이름을 차례로 호명했다. "… Mr. Freedly, Mrs. Stay, Mr. Flanagan …" 이 선생님들의 역할이 그녀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고, 아름다운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영상속 그녀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대여섯명의 선생님 이름을 부른 뒤 그녀의 목소리는 울먹이는 것 같았다.


물을 마시며 숨을 골라야 했을 정도로 감정이 복받쳤고 그녀의 눈시울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10대 시절의 마리사 메이어의 추억은 이런 선생님들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고학년 때 닭을 풀어 놓는다든가 복도에서 화장실 휴지를 던진다든가 하는 장난을 기억하고 있었고, 조셉 콘라드의 단편 소설, "어둠 속(Heart of Darkness)" 수업을 듣고 감명 받아. 문학 선생님의 교실에 들어가 교실을 정글처럼 꾸미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플래너건(Wayne Flanagan)은 마리사 메이어가 중학교에 올라가기 싫다는 이유로 교실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마리사 메이어가 학교를 떠나지 않은 것은 중학교에 올라가 공부 못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 고역도 싫어했다.


플래너건에 따르면 꼬마 마리사 메이어는 "안전을 추구하고, 안정을 추구하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야 하는 종류"의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마리사 메이어가 훌륭하게 성장 할 것을 알고 있던 그는 "넌 중학교에서도 잘 해낼 것이다"라고 조언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그녀가 고집을 부렸고, 결국 플래너건 선생은 마리사 메이어의 어머니를 불러야만 했다. 그녀의 어린시절 만난 이런 선생들을 특별하게 기억했고 스페셜 멘토로 기억했다. 


어린 시절 선생님들과 함께 마리사 메이어는 어머니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어린 메이어는 피아노 레슨, 배구와 야구를 즐겼으며,  수영과 스키 강좌와 주당 35시간 상당의 발레 수업도 중고등학교때 받아야 했다. 


마리사 메이어 어머니는 발레 덕에 딸이 "비판과 원칙, 침착함과 신뢰를 배웠다"고 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그녀가 컬링팀 같은 서클활동을 했고, 치어리더와 토론 모임, 라인댄스 활동도 계속 했다. 마리사 메이어의 이런 바쁜 학창 시절은 어머니인 마가렛에서 비롯됐고 그녀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인 플래너건은 메이어의 어머니에 대해 "자주 학교에 와서 딸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래서 메이어 집안과 친구가 될 정도였다." "항상 딸 걱정을 하고 올바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햇지만 잘 성장했다. 그런 부모의 자식 사랑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의 악착 같은 교육열에 더해 선생님들과의 좋은 관계는 그녀의 어린시절을 외롭지 않게 했다. 공부에 더 열중해야 했지만.. 


다음글에 계속..


해당 글은 iamday.net의 IT칼럼(http://www.iamday.net/apps/article/talk/2931/view.iamday)에 기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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