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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레빈슨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음향마니아에게 널리 알려진 마크레빈슨이란 브랜드는
마크 레빈슨이란 음악 전문가에 의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마크레빈슨과 오디오 기기회사인 마크레빈슨과는
현재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유는 같이 동업을 했던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동업자가 먼저 상표 등록을 하는 바람에 자신의 이름에 대한
브랜드 권리를 같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이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아마 동업자와 금전적 문제로 인한
갈등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있게
다뤄야 겠지만.. 암튼 혹자는 배신에 의해 마크레빈슨이 팽당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결국은 1980년대 중후반부부터 결별을 하게되고 마크레빈슨을 떠나
홀로서기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결국 이 시점부터 마크레빈슨이란 회사와는 마크레빈슨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봐야 겠지요.

마크 레빈슨은 원래 섹스폰 연주자 였다고 합니다.

이미 열두 살 때부터 플루겔 혼과 더블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20세가 되어서는
소니 롤린스, 칙 코리아, 키스 재릿 같은 재즈의 명인들과 연주를 했다고도 전해 집니다.

아무래도 이런 음악적으로 뛰어난 감성 덕에 음향에 대해 더 열망하지 않았을까요?

마크레빈슨이란 음향 전문 회사는 그런 그의 열정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후에 마크는 자신의 집 창고를 개조한 공장에서 부터 음향기기 회사를
만들어 자신의 발자취의 시초가되는 LNP-2라는 최고의 명기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LNP-2 프리앰프 사진)

그후 동업자와 함께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스(MLAS)' 란 회사를 설립하고
당시 최고의 홈 음향기기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물론 공전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최고의 명기들을 만들어 명성을 날리다 MLAS를 나온뒤 설립한 회사가 첼로라는
홈 음향기기 회사입니다. 제 기억에 나름대로 위치를 기록하던 회사였는데..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문을 닫게 된다고 하네요.
이 대목에선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크 레빈슨사를 뛰어 넘는 최고의 음향 회사로
성장 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팬의 입장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마크는 그뒤 Custom installation을 위조로 하는 Red Rose Music을
설립한다고 합니다. 저도 이 포스팅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 알게된 사실이라.
어떤 목적에 의해 어떻게 설립된 회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이 회사는 현재도 New York에 본사를 두고 나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마크의 음악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크의 오디오관은 아주 단순하다고 합니다.

"소리는 연주장의 그 것과 같아야 한다"에서 출발하는 것이 마크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즉 오디오는 현장의 열기와 연주자의 감성, 청중의 호흡을 전할 수 있는 기기여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아주 기초적인 이부분이 충족되지 못하면 음악도 오디오도 아니다란 설명입니다.

이런 마크의 철학을 더 공고히 했던 몇명의 명인이 있엇다고 합니다.
딕 버윈이란 사람은 마크의 오디오 스승격인 사람으로 현재 81세의 나이에도
오디오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탐 콜란젤로(현재 교통 사고로 고인이
되었습니다.)등이 그의 오디오관을 확립하는 계기를 심어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특히 콜란젤로는 LNP2부터 첼로의 오디오 팔렛등의 명기를 함께 만든 영원한
음향의 동반자라고도 합니다.

지금까지 마크가 음향 전문가로 발돋움해 왔던 시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는 그의 철학과 그가 음악계에 미친 영향을 조금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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