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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 152년 역사, 60개국 성공적 전개

리바이스트라우스는 세계 60개국 3만여개의 판매망을 가진 글로벌 기업.
지역별로 유럽 35개국, 아메리카 11개국, 아시아 12개국, 남대륙 2개국 등에 진출,
어딜 가더라도  ‘리바이스’ 매장을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확산됐다.

150년간 진의 대표 아이콘으로 군림하면서 전 세계 사람을 열광하게 만든 리바이스트라우스사의 전략은 무엇일까?

미국의 대표 아이콘인 ‘리바이스’의 글로벌 정책은 지난 1964년 유럽에 진출한 것에서
시작된다. ‘리바이스’는 마치 진바이러스처럼 유럽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1971년 일본에 리바이스트라우스재팬 지사를 설립, 아시아 섭렵에도 나섰다.

글로벌화로 인해 매출은 실로 놀랍게 증가한다. 1884년 240만달러에서 유럽 진출 후
1968년에는 2억달러를 달성했다.

이 후 아시아까지 진출한 1975년에는 10억달러를 달성했으며 1996년에는 50개국에
진출해 60억 달러의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 ‘리바이스’는 모든 사람들의 패션아이콘으로
‘진=리바이스’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젊음의 상징 데님의 독창적 디자인 전개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독창적인 디자인! 텐트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데님을 처음 개발한
리바이스트라우스의 실험정신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1872년에는 주머니 리벳을 처음 사용했으며 1890년에는 제품명에 일련번호를 붙여
상품명을 만든 501 바지를 개발했다.

당시 501은 혁신적인 팬츠로 분류됐으며 젊은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전체 데님의 10% 매출을 차지할 정도로 판매가 급증했다.

1915년에는 오버롤즈 바지를 개발했고 1922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벨트용 고리를
바지에 부착했다. ‘리바이스’는 계속해서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주력할 전략상품을 지정해 판매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엔지니어드진’, ‘타입원’, ‘501’, ‘레드라벨’ 등 이름만 들어도 전세계 소비자가 알 수 있는
전략 제품이 ‘리바이스’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시킨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해외로 외주 생산기지 전환

리바이스트라우스사의 글로벌화에 따라 2000년대 초 미국 생산기지 44개를 정리하고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을 공략하기 위한 3개 생산기지로 전환한 것도
이 회사의 글로벌 포인트다.

유럽은 동유럽에 3개 공장과 약 5만평 규모의 창고를 메인으로 제품을 공급하며
아메리카는 브라질에, 아시아는 중국에 생산 공장과 물류창고를 구축해 딜리버리를
최대한 단축시켰다.

물류창고는 리바이스트라우스사에서 자본을 투자해 개발한 자동 물류발주시스템인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가 설치돼 있어 모든 물류가 전자동으로
세계 각국 로컬 숍까지 제품이 도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제품이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체적인 유통 흐름을 파악해
모든 중복 기능을 없앰으로서 재고율과 유통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또 각 매장에서 필요한 제품을 컴퓨터상으로 주문하면 각 나라에 도착하는 시간이
1/2로 줄어들게돼 매출이 늘어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소비시장에 맞게 고가 저가로 이원화

2000년대 초반 리바이스트라우스사는 글로벌 정책의 큰 틀을 다시 세우게 된다.

통일성 있게 같은 제품과 같은 이미지의 브랜드를 어필하던 것에서 지역에 따라
다른 글로벌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유럽과 아시아 매출은 증가하는 것에 반해 홈경기장인 미국에서는
매출이 40% 급감해 4천13억원의 손실을 보는 등 마켓에 따라 제품 판매가 현격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매출이 급격히 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진마켓은 프리미엄과 저가 진으로 시장이
이원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리바이스트라우스사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저가진을, 진소비력이 높은 유럽에서는 고가진 전략을 펼치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 3만8천원하는 ‘리바이스’ 팬츠가 유럽에서는 10~11만원대로 거래되고
있다.

미국에서 저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지난해 <월마트>와 조인해 약 3,422개의 할인점에
입점했다. 할인점에서 3달간 영업을 진행한 결과 약 97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리바이스트라우스사가 다시 흑자로 전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마케팅의 재왕 ‘리바이스’

마지막으로 ‘리바이스’ 성공 전략은 60개국에 진출해 있으면서도 모든 소비자에게 젊음과
열정이라는 꾸준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는 마케팅에 있다.

더군다나 각국 상황에 맞는 개별 마케팅을 전개함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한다는 것에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 마케팅은 문화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똑같은
광고와 이벤트는 피한다는 것이 리바이스트라우스사의 지론이다.

대신 본사의 큰 컨셉 안에서 광고가 진행 되야하며 시즌마다 평가회의를 거쳐
우수 광고를 선정하기도 한다.

이 것이 리바이스가 150년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아직도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넘버원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비결이다.

리바이스트라우스사는 최근 고가진에 대한 소비력이 강한 유럽시장을 강화하고
성장 가능성을 잠재한 아시아 지역을 특별 관리하는 등 글로벌화를 더욱 강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브랜드를 하나의 통일성 있는 이미지로
구축하는데 힘쓰고 있다.



리바이스트라우스 연혁

1829 리바이 스트라우스 바바리아 지방에서 출생

1853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의류도매업 시작

1872 리벳, 특허 획득 및 생산 착수

1890 501이라는 일련 번호를 사용함으로써 최초로 제품분류번호를부여.
       LS&CO.로 사명변경.

1915  웨이스트 오버롤즈로 LS&CO가 Highest Award수상.

1922 팬츠에 벨트용 고리를 최초로 부착

1936 Red tab 출시

1952 LS&CO의 자선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리바이 스트라우스 재단이   설립됨

1954 지퍼 단 청바지 등장

1965 유럽과 아시아로 리바이스 제품의 판로 확장

1971 LS&CO이 상장 기업이 됨. 리바이 스트라우스 재팬이 설립됨으로써 처음으로 아시아 시장에 공식적으로 진출.

1983 한주 통상으로 한국 진출, 리바이스와 라이선스 계약

1992 제조 및 마감 하청업체의 임금, 노동시간 근무조건, 윤리기준과 환경에 대한 포괄적 기준을 수립한 최초의 글로벌 기업이 됨

1993 리바이스트라우스 코리아로 독자 진출

2003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엔지니어드 진 출시

2003 Type 1™ 출시. 리바이스트라우스의 LS&CO 창립 50주년이자    청바지 탄생 1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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