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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겠지만 어설프군은 저멀리 전라도 전주근처 완주군 태생이다.
한마디로 깡촌 출신이란 이야기다.

어설프군이 서울와서 문화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많이 받았던것 같다.
물론 지금도 받고 있지만 전주에선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서울 이였던 것이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점이 더 많았던것 같다.

어설프군이 받았던 문화적 충격중에 요 근래들어서 와인이란 녀석때문에
받는 충격이 상당하다.

여인과 와인샵에 가서 와인한잔 즐기는 것도 예절이 필요하며
또 무었보다 와인 선택에 있어 배경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떤 와인의 경우 그날밤을 같이 보내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부끄부끄~~ ㅠ.ㅠ)

암튼 그래서 최소한 상대가 와인을 추천할때 어떤 의미인지는 알아야 하며
또, 알고 먹는 와인이 더 맛있지 않겠냐는 생각과 함께 미디어U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사장님이 진행하는 와인 스터디 내용을 올리기로 했다.

미디어U는 직원들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고급과정까지는
흉내낼 수 없지만 초보과정 정도의 수준으로 이것저것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어설프군도 정말 능력 없지만 포토샵 강좌를 하고 있다. ㅠ.ㅠ)

암튼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와인은 종류가 몇십만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공부하며 먹기 위해서는 프랑스 와인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게 보르도와 부르고뉴로 나뉘는 프랑스 와인은 위 그림에서 처럼
두개의 지방으로 나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중에서 부르고뉴 와인의 시작과 전통을 오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부르고뉴 공작의 권력은 프랑스 왕보다도 막강했다고 한다.

공작 궁전이 위치한 디종은 외교와 사교의 중심지였는데 공작의 권세를 과시하듯
날마다 화려한 연회가 펼쳐지던중 통치자였던 선량공 필립(Philippe the Good)은
명령을 내려 영지내에서 ‘피노 누아(Pinot Noir)’를 제외한 다른 포도들은 모두 뿌리를
뽑아 버려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와인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됐단다.
"
어설프군도 검색을 통해 알아낸 정보이다.

암튼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600년 동안 부르고뉴 농부들은 자연과 피노 누아에
의존하면서 와인을 만들어 오고 있다고 한다.  

피노 누아는 ‘카르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카르멘이란
오페라의 주인공 처럼 자유분방한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사랑을
하지만 결국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해아리기 어렵다는 내용처럼..

사랑과 열의만큼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생산량이 많거나 하면 묽어져서 제맛을 내기가 여간 힘든다고 한다.

그래서 양조용 포도 중에서 가장 경작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찌됬든 브로고뉴에 대해 추가설명을 하면 이렇다.
" 광의의 부르고뉴라면 보졸레와 샤블리까지 포함하지만, 마니아들이 지칭하는
부르고뉴란 남북의 길이가 50㎞도 되지 않는 ‘코트 도르(Cote d’Or)’만을 일컫는다.

코트 도르는 ‘황금 언덕’이라는 뜻으로, 로마네 콩티, 몽라셰, 샹베르탱 등
명주들이 나오는 밭들이 쭉 늘어서 있다. 북쪽은 ‘코트 드 뉘(Cote de Nuits)’,
남쪽은 ‘코트 드 본(Cote de Beaune)’으로 불린다. 북쪽에는 ‘뉘 생 조르주(Nuits St.
Georges)’가 중심이고, 남쪽에는 본이 중심 도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코트 드 뉘는 레드 와인이, 코트 드 본은 화이트 와인이 더 유명하다.
"

중세에는 수도사들이 밭을 하나씩 개간하면서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들이야말로 와인 생산기술을 보전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전통을 유지했다. 당시에 유명했던 포도밭은 아직도 여전히 유명하다.

수도사들은 오랜 기간 대지와 호흡하면서 테루아르의 우열을 구분했던 것이다.
“가장 높은 언덕에서 난 와인은 교황을 위하여, 중간에 있는 언덕에서 난 와인은
추기경을 위하여, 아래에 있는 밭에서 난 와인은 주교들을 위하여”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포도밭의 위치는 품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수도사들은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을 관리하기 위해 울담을 쳤다.

그로 인해 ‘울담을 친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클로(clos)’가 등장하게 됐다.
‘클로 드 부조’처럼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와인의 이름은 바로 밭의 이름인 것이다.


와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도 부르고뉴 와인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고 한다.
밭마다 붙어 있는 이름들, 수많은 생산자의 이름들까지 알아야 하기 때문안데
클로 드 부조 같은 경우는 무려 80명 정도의 다른 생산자들 이름으로 와인이 생산
된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지 않는가 말이다.

로마네 콩티처럼 생산자 한 군데에서 밭 하나를 통째로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라벨에 ‘모노폴(Monopole)’이라고 표기하곤 한단다.

지금은 드물어도 여성 생산자들이 존재하지만 부르고뉴는
언제나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한다 그래서 아들이 없으면 그들은 자기 포도밭을
관리해줄 사위를 찾아서 물려줬다니 얼마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통이 설여
있는지 알것같다.

그렇게 물려지게 되면 사위의 성으로 이름이 바뀌어 전통을 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19세기 중반에 라로즈(Laroze) 집안에서 포도원을 설립했는데,
아들이 없자 드루앵(Drouhin) 집안에서 사위를 맞아들였다.

사위가 포도밭을 관리하면서 이름은 ‘드루앵 라로즈’로 바뀌었다.
부르고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밭을 지켰다.
"

즉 그들에게 와인을 만든다는 행위는 삶였던 것이다.

피노 누아라는 이름은 ‘까만 솔방울’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한다.
색깔이 짙으면서 솔방울처럼 딴딴하게 생겼기 때문이란다.

마을마다 저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과정에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밭마다 다른 맛, 생산자마다 다른 개성들이 모자이크처럼 얽혀 있어
제대로 공부하려면 왠만한 학교 수업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다음편에선 보르도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리고 어제 미디어U에서 배운 내용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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