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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번 포스티에서는 부르고뉴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보르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보르도 관련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차이를 알기 위해
와인병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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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와인병을 보면 뭔가 약간 다르지 않은가?
바로 프랑스 와인의 오랜 전통에서 유래되서 칠레나 호주등 와인을 제조하는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유의 병을 사용하는데 보르도산 와인의 경우 좌측 이미지처럼
원주형태가 일정하다 병입구에 와서 약간 모아지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부르고뉴 와인은 오히려 원주형태에서 유선형의 모양을띄어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프랑스 와인 병의 경우 밑바닥이 약간 오목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유는 오래된 레드와인은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와인을 접대할 때는
침전물을 제거할 수 있는 디켄터(decanter)를 통해 와인에 생기는 침전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것이라고 한다.

침전물이 가라 앉은 와인은 침전물을 제외한 맑은 와인을 데칸터로 옮긴 후에
글라스에 따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튼 이렇게 보면 더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보르도와인에 대해서 더 알아보도록 하겠다.
와인의 세계에 있어서 최고 명산지는 보르도라고 한다. 이미 세계적으로도 와인의
대명사가 되는곳은 보르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모르도 지방에서 와인재배가 시작된 것은, 당시 학원도시로 유명했던 보르도가
버디가라(burdigala)라고 불리던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지롱드강은 개론강과 돌도뉴강이 합류해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한강정도로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이 강을 중시으로 부르고뉴와 보르도로 나뉘는데 보르도 와인은 이중 보르도 지방의
세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첫째는 지롱드강과 개론강의 서부와 남부에 펼쳐져 있는 메독 지구, 그라브 지구,
화이트의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소테른지구와 두번째 지역이 개론강과 돌도뉴강
사이에 위치한 안틀드멜지구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지롱드강과 돌도뉴강 불부와
동부에 위치한 산테밀리온지구와 뽀믈롤 지구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곳은 자갈이란 뜻을 가진 그라브 지역이라고 한다.
그라브 지역은 개론강에서 밀려온 자갈이 쌓여서 이루어진 토양이라 아마 이름도
그렇게 붙여진듯 하다.

12세기 보르도 지방을 포함한 아키텐느 지방의 상송인인 프랑스 왕비
레오놀이 루이 7세와 이혼후 30세의 나이로 11살 연하의 귀족 앙리와 재혼했는데
참 아이러니 하겠도 이 앙리가 영국왕 헨리2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남편이 영국왕이 되면서 프랑스 지역이었던 아키텐느 지방이
영국령이 되어 백년전쟁이 시작되었고 장작 300년간 보르도는 영국령으로
그 이름을 날리며 클라렛 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보로드 와인은 오랜 숙성기간을 버틸수 있는 와인으로 발전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령에 있다보니 보르도 와인을 구하기
위해 먼 지역을 여행해야 했기에 오랬동안 버틸수 있는 와인이 필요 했던 것이고

두번째 이유로는 프랑스와 영국의 차이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경우 와인을 식사와 함께 즐기므로 그날 메뉴의 특성에 맞게 여러 와인중
맛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와인을 즐겨 마시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숙성도가 다다르기
전에 와인을 마신다.

하지만 영국령으로 오랜기간 있다 보니 영국인의 특성에 맞춰야 했는데
영국의 특성은 식후 따로 마시며 와인 자체의 맛을 즐기기 때문에 완전히 숙성시켜
복잡한 향기와 맛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귀족사회에서 보르도 와인이 유행하면서 싯퍼라고 불리던 와인과
포도밭을 소유한 당시 대박을 맛보았다고 한다.)

암튼 이렇게 번성하던 보르도는 드디어 백년전쟁의 시작해인 1337년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당시 왕이던 필립6세가 그런 모습에 분통을 터트렸지 않았나 싶다.
암튼 당시 크게 군사력이 강했던것도 아닌데 영국왕 에드워드3세 소유의 영토를 전부
몰루 하겠다고 선언을 하면서 백년정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프랑스가 밀렸지만 당시 너무나 유명한 잔다르크와 오를레앙 해방군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켜 프랑스쪽으로 이 지역을 편입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잔다르크를 그냥 봤는데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ㅠㅠ)

그리고 마지막 해인 1453년 영국 장군 존 톨벗(John Tolbot)은 헨리 6세의 명을 받고 전장으로 향한다. 존 톨벗이 이끄는 영국군은 카스티용지역에서 샤를7세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마주치게 된다. 영국군은 열세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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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의 접전끝에 영국군은 대패하고 총사령관 존 톨벗은 7월 17일 장렬하게 전사한다. 카스티용 전투의 패배로 영국은 명장 존 톨벗을 잃었을 뿐 아니라 300년 가까이 소유하고 있던 보르도 와인에 대한 모든 권리마저 상실하고 만다.

샤토 탈보란 와인은 존 톨벗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가 됐다. 톨벗을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탈보가 된다. ‘샤토 탈보’의 라벨을 보면 ‘Ancien Domaine du connetable Talbot Gouverneur de la Province de Guyenne 1400~1453'이란 황토색 문구가 적혀 있다. ‘기옌지방의 영주 총사령관 탈보의 오랜 영지 1400~1453’이란 의미다.

탈보장군의 이름을 딴 와인 ‘샤토 탈보’는 보르도 생줄리앙 마을의 그랑크뤼 4등급의 와인이다. 102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에서 매년 46만병을 생산한다.

포도품종은 카베르네 쇼비뇽 66%, 메를로 26%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 3%, 프티 베르도 5%를 사용해 브랜딩한다. 미디엄 바디에서 풀바디에 이르는 탈보는 외우기가 쉬워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찾는 그랑크뤼 와인이다. 2002년에는 거장 히딩크 감독이 자주 마시는 와인이라 해서 국내에서 ‘샤토 탈보’붐이 일기도 했다.

이래저래 그래서 백년 전쟁을 기점으로 유명한 와인 브랜드가 생겼다고 한다.

암튼 이런 이유로 보르도는 당시 와인을 중심으로한 화재가 만발했었고
또, 지금의 명성을 이런 역사적 결과로 얻어낸것이 아닌가 한다.

보르도 이야기 후속편을 통해 보르도 와인의 특성을 좀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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