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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명 IT 기업들도 마찬가지지만, 아마존은 특히나 애플처럼 제프 베조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기업중 하나이다. 그의 성공과 좌절이 바로 아마존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특징 때문에 사람들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비교하곤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마존을 분석하려면 필연적으로 제프 베조스 분석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에 바로 이런 점을 이장에서는 언급해 보고자 한다.





스티브잡스와 제프베조스의 묘하게 닮은 인생

베조스도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17세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스티브 잡스에 비해서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는 현재까지도 진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다. 어머니 미구엘이 양부인 베조스와 재혼하면서 베조스라는 성을 갖게 됐고, 그의 양부의 성실함과 헌신적인 교육이 그의 성공을 도왔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 할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성공 스토리와 상당히 닮아 있다.


그의 양부 조차도 범상치는 않았던 인물인데, 10대 시절 쿠바로부터 도망쳐온 석유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의 나이 열여섯 살까지 매년 여름을 미국 텍사스의 외가 농장에서 보낼 수 있게 배려했다. 


외할아버지인 프레스톤 기스는 미국 핵에너지위원회를 이끈 고위공직자였다. 이런 외할아버지와다양하게 대화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가기를 바랬던 것 같다. 프레스톤 기스는 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프 베조스를 기술에 관심을 갖게끔 유도했다. 소떼 몰이 같은 일반적인 놀이 이외에 농기구를 가지고 놀면서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했다고 한다. 


그들의 놀이는 예를들어 이런 것인데, 진공 청소기를 가지고 호버크래프트(hovercraft : 압축공기를 이용해 수면 위를 미끌어지는 기구)를 만드는 놀이 같은 것으로 훗날 제프 베조스가 사물과 세상을 이해해가는데 이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됬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이런 양부의 작은 헌신들이 바탕이 되어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런 과정이 성공을 위한 주춧돌이 됐음을 의심 할 나위가 없다. 이런 비슷한 닮은 점 때문에 그가 제 2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는 것 이다.



컴퓨터에 관심 많은 제프베조스 물리학자를 꿈꾸다

제프 베조스는 14세 때부터 컴퓨터와 IT에 관심이 많았고 이것이 향후 그가 IT 기업 아마존을 만들어가는데 큰 중심 축이 됬다. 관심만 많았다면 지금 다른 직종에서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빌 게이츠나 구글의 래리 페이지 좋은 두뇌와 함께,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고집스러운 철학이 어린 시절부터 형성됬다.


당연히 공부도 잘했고, 이 때문에 1986년 프린스턴대 입학해 전자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는데, 능력이 있었으면 서도 그는 프린스턴대만 고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를 “프린스턴대에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고 밝혔는데, 어려서부터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을 좋아했고 그런 물리학자의 길을 따르고 싶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린스턴대 입학후 선택한 첫 전공이 이론 물리학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물리학도로서는 크게 자질이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같은물리학과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자신은 겨우 중간 수준에 머물러 이대로 졸업하면 잘해야 중간 밖에 못하는 물리학자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같은 좌절 아닌 좌절을 겪고 다음으로 관심이 많았던, 전자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로 전공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관심 많았던 IT에 대한 동경이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론 그가 실리콘 밸리 성공을 위한 첫 걸음이자 중요한 첫 시작이었다.

 


대기업이 아닌 벤처를 선택한 제프 베조스

뛰어났던 사람이라 제프 베조스는 1986년에 프린스턴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벨 연구소, 인텔 등 최고 유망 기업들이 그에게 입사를 제안 했는데, 그의 인생의 중요한 두번째 갈림길에서 그는 이런 안정적인 직장이 아닌 벤처기업 피텔(Fitel)을 선택한다.


왜? 아마존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 도전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지는 바로 이런 아마존의 해적왕 제프 베조스의 선택을 보면 이해 할 수 있다. 위험이 있더라도 도전 가능성이 있다면, 돌아가지 않는 그의 스타일이 이때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첫 직장 선택에서도 안정이나 규모 같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미래의 가능성”만 보고 선택했는데, 뛰어난 그의 안목은 23세의 나이에 제트기를 이용해 세계를 누비는 성공을 안겨줬다. 


당시 피텔은 미국 맨해턴에 위치해 있었는데, 주식 거래 네트워크 개발을 하고 있었고, 당시 IT 붐과 함께, 이 사업이 주목을 받으며, 23세 나이에 기술 담당 이사로 선임 되 영국, 일본, 호주.. 와 거래를 진행하며 승승장구 했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1988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로 자리를 옮겼고, 그의 전직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IT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이 때 나이가 26살 이었다. 이후 최연소 부사장에 올랐는데, 삶이 안정이 되자 일상적 업무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 도전을 선택하게 된다. 


다음으로 제프 베조스를 사로 잡은 사람이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D.E. 쇼 앤 컴퍼니의 데이비드 쇼 였다. 데이비드 쇼의 주선으로 1990년 D.E. 쇼 앤 컴퍼니의 부사장으로 입사한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인 데이비드 쇼와 영리하고 두터운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제프 베조스와 깊은 사고의 교감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둘다 공학도 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장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이런 상호에 대한 매력이 회사 이직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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