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텔은 원래 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이었다. 1968년 설립 된 인텔은 높은 기술력으로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때쯤 컴퓨터 시장의 급속한 성장으로 정보화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폭풍처럼 성장했다. 


1972년 인텔이 만든 1키로바이트 1103 D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메모리로 기억되기도 했던 가장 잘나가던 시기였고 이 메모리는 당시 인텔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 할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역습

이런 히트 상품으로 당시 인텔은 메모리 칩 시장을 거의 100% 점유하는 위력을 보여주었고, 이 때문에 1970년대 말 앤디 그로브는 "인텔은 메모리 산업을 대표하며, 메모리 칩이 인텔을 의미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 기업이 이 시장을 무섭게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의 대형 반도체 메모리 제조 기업들이 고품질 저비용 제품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며 시장이 급격히 일본 기업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후지쓰도시바, NEC, 히타치 같은 기업들이 주인공이었고, 실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 기업은 70% 시장 점유율이라는 전무 후무한 업적을 쌓으며 현재 전자 왕국 일본을 만드는데 일존한다. 


인텔이 메모리 산업을 떠날 결정을 하던 시기 상황은 이렇다. 기술 발전에 따라 경쟁자의 우위에 서기 위해 많은 연구 개발비가 투자되어야 했지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져 경쟁 플레이어가 급속도로 증가해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게 된다. 



위대한 경영의 신 엔디그로브의 경영의 시작

공급 과잉은 가격 폭락을 불러왔고, 이익이 떨어지자 주주들은 반발을 불러왔다. 최근까지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 사이클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특히, 1984년 여름 3개월 동안에는 메모리 가격이 40%나 폭락하며, 치킨게임으로 대변되는 대형 메모리 밴더간의 전쟁이 이때부터 시작됬다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엎친대 덥친격으로 HP마저 메모리 반도체 성능에서 미국 기업보다 일본 기업의 성능이 높다며 제품선을 일본으로 변경하면서 큰 위기에 처했다. 이때 전설적인 경영자이자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엔디그로브의 고든 무어는 이 상황 타계를 위한 논의를 하게 된다. 


이 논의가 아직도 일화로 전해지는데, 이 현명했던 천재적 경영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인텔의 미래를 결정하게 됬다고 한다. 


메모리시장의 위기로 앤디 그로브는 고든 무어 회장에게 물었다. 

"우리가 쫓겨나고 새 CEO가 온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고든 무어 회장은 잠시 생각한 후에 이렇게 대답한다.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떼겠지요?" 


그 대답뒤 앤디 그로브는 고든 무어 회장에게 이렇게 답을 했다. 

"그럼 우리가 이 방을 나갔다 다시 들어와 그렇게 결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인텔은 이런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 상황에서 무어 회장과 엔디그로브의 현명한 결정으로 D램 사업 철수를 결정하게 되고, 그 발표를 1985년 중반 앤디 그로브가 직접 마지막 남은 D(DRAM) 메모리 칩 제조공장을 방문해 공식적인 D램 사업 철수를 알리며 위대한 경영적 한수가 기록되게 된다. 


이 결정은 IT 역사상 손에 꼽힐만한 순간의 선택으로 꼽힌다. 그 이유는 선택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도 인텔은 크게 추락 또는 그저 그런 기업으로 도퇴 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한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생각 만큼 어렵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제 3자의 눈으로 본다면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지만, 자신들이 잘해왔던 분야를 포기했을 때의 두려움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두려움이 경영적 선택을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위기 상황과 의견대립을 슬기롭게 해처나온 지혜

이 당시 이 두 경영자가 사업 전환에 고민을 한 것은 인텔 내부에서 조차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저가 메모리 경쟁에 “일본보다 더 큰 공장을 건설해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의견과 “근본적인 변화와 최첨단 기술로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는데, 공동 창업자들은 소수의 의견인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로 진출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사업포트폴리오 자체가 바뀌는 매우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 인텔과 공동 창업자들은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죽음의 계곡 건너기’ 극단적인 용어까지 사용하며, 사업 전환에 대한 역량 결집을 시도한다.


1986년 ‘인텔은 마이크로 컴퓨터 회사’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모든 회사의 조직과 시스템을 마이크로프로세스 개발에 올인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말로 풀어 놓은 이상황은 말 그대로 도박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성공하면 인텔과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지만, 실패 할 경우 기업이 망할 수도 있는 결정이다. 이 결정을 위해 리더는 시장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고 과감하게 도전 할 수 있어야 한다. 


과감한 도전을 위해선 기존의 잘하던 것을 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축구 선수가 부상을 당하자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상황을 생각하며, 인텔의 경영자에게 인텔이 재 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을 던져 본다면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인데, 이런 답을 내놓지 않을까? “PC를 떠나야 한다”


어쩌면 이미 답은 나와있는지 모른다. 인텔 내부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현재 인텔이 어떤 방향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PC를 떠나서 어떤 먹거리를 찾느냐로 귀결 될 수 있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인텔도 이런 시대를 예견하고 다양한 투자를 해왔다.



인텔은 IBM 만큼이나 다양한 기술투자를 하는 기업

지난 2006년부터 인텔랩과 카네기멜론대가 공동으로 연구해 오고 있는 가정용 로봇 버틀러 만둘가 프로젝트 같은 경우를 보면 이들의 주력 분야인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가 아닌 로봇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노인이나 장애자들의 일상 보조를 위한 지원 분야에도 실험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특수 카메라로 사물의 특징을 해석해 자동으로 요리법이나 쇼핑정보.. 등을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중이기도 하다.


이 이외에도 자동차 3D 시뮬레이터 프로젝트인 홀로덱카 프로젝트, 어떻게 위치에 공간 제약 없이 기기 사용을 지원하는 포티코프로젝트,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꿔 들려주는 기술, 자동차 전조등으로 차간 거리를 측정해 알려주는 기술.. 등 다양한 사용자 경험 기술에 투자해왔다. 


이미 수년전부터 이들 기술을 지원 개발해왔고, 이런 지원 기술들중 차간거리 유지 기술 등은 이미 상용화 되기도 했다. 


이 이외에도 하드디스크를 대체 할 메모리 기반의 SSD 분야, USB 대체를 위한 썬더볼트 인터페이스 개발, 노키아와 미고OS 개발도 시도하는 것은 미래의 컴퓨팅 환경인 사물 컴퓨팅과 증강 현실 분야등에도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위기가 올지 알 수 없기에 그런 준비를 해온 기업이 인텔이다. 어떤 비전을 꿈꿔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텔리니는 자신이 취임한 이후 비전을 PC 시장에 더 기반을 뒀다. 당시 시장 상황이나 인텔 상황에선 옳은 선택이었지만, 현 시점에 와서는 옳지 않은 선택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새로운 신임 CEO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경영적 판단에 결론이 내려지려면 몇 년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 시간을 훌륭하게 보낸다면 좋은 결과와 함께 인텔이 재기하는 모습을 모여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노키아 같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중요한 갈림 길에 서 있는 인텔이데, 스스로 알고 있는 해답을 어떤 과정으로 풀어낼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다음편에 계속..

댓글